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결국 중단됐다. 윤 대통령의 비속어 동영상을 보도한 MBC 사태가 점점 커져 눈사태가 되었다.
도어스테핑은 한국 정치에서 혁명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국의 대통령은 지엄한 존재다. 수석이나 장관도 대통령 만나기는 힘들다. 하물며 청와대 출입기자가 대통령을 만나 직접 질문할 기회가 많을 리 없다. 더욱이 어느 나라 대통령이든 질문을 싫어한다. 대통령은 사진기자는 좋아하지만, 취재기자는 싫어한다. 사진기자는 질문이 없기 때문이다. 38년간 백악관을 취재한 헬렌 토머스 기자의 말이다. 가시 같은 기자의 질문은 대통령의 심장을 찌른다. 케네디 대통령조차 기자들을 '떼거지'로 불렀다. 재키 케네디는 셰퍼드 강아지에게 무엇을 먹일지 묻자 '기자들'이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이 과감히 도어스테핑을 시도한 것은 사실 모험에 가까웠다. 미국도 사실 대통령이 헬리콥터를 타러 갈 때 약식 질문을 하는 정도다. 곤란한 질문이라도 나오면, 대통령은 소음을 핑계로 듣는 척하며 탑승해 버린다. 일본에서 도어스테핑을 정착시킨 고이즈미 총리는 총리 취임 시 정치 경력이 30년이 넘었다. 정치 경력이 전무한 윤 대통령 같은 사례는 없다.
도어스테핑을 시작한 건 순전히 윤 대통령의 신념 때문이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통령은 국민에게 투명하게 드러나고, 국민의 날 선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손실이 만만치 않았다. 빅데이터를 보면, 도어스테핑이 6월 중순까지는 지지율에 플러스였지만, 그 이후는 마이너스였다. 1년에 한두 번 하기도 힘든 일을 매일 치렀으니, 심리적 부담도 심대했을 것이다. 당장 그만두라는 주변의 만류도 많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신념을 고수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도어스테핑이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긴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천명했다.
도어스테핑은 용산 시대의 상징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벗어나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단호한 결단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으나 실패했다. 그래서 도어스테핑 중단은 윤석열 정부 최고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도어스테핑의 가치는 단순한 기자회견을 넘어,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이라는 한국 정치의 미래 비전이기도 하다. 윤 정부의 레거시로 남을 게 있다면, 그 처음은 도어스테핑일 것이다. MBC 문제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MBC와 맞서는 모양새는 정치 전략으로도 하책이다. 대통령이 제대로 맞서 주니, MBC는 내심 기쁠 것이다. 존재감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최근 MBC의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2010년 이후 10년간 MBC 시청률은 5.7%에서 2.3%로 떨어졌다. 방송 3사 가운데 만년 최하위였다. 그런데 지금 월드컵 중계는 물론 저녁 뉴스에서도 MBC가 시청률 1위로 올라섰다. 대통령에게 고함친 이기주 기자의 네이버 구독자 수는 2천800명대에서 4만여 명으로 폭증했다. MBC를 '참언론', 이 기자를 '참기자'로 추앙하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결집한 것이다.
대통령은 '시간의 경제학'에 통달해야 한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5년 임기는 화살보다 빠르다. 그래서 국정 우선순위를 정하고,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민생은 인플레와 가계 빚으로 파산 직전이다. MBC 문제에 쓸 시간이 있겠나. 대통령을 망하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런 싸움에 속으면 안 된다.
11월 25일 갤럽 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0%, 국민의힘 지지율은 32%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긍정보다 2배가 넘는다. 당선 시 지지율에서 20%나 빠졌다. 콘크리트 지지층 30% 외에는 지지를 철회했다. 지난 5주째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전쟁이라면 진 싸움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헛된 곳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MBC 문제는 빨리 끝내고, 도어스테핑도 새로운 모습으로 재개해야 한다. 대통령이 대변인 노릇을 하면 안 된다. 대통령은 마지막에 등장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 기자회견이 끝나면, 기자들은 "대통령님! 감사합니다"(Thank you, Mr. President)라고 외친다. 하지만 대통령의 미움을 받는 질문을 하는 게 기자의 본분이다. 링컨은 "나는 국민을 굳게 신뢰한다. 진실을 알게 되면 그들은 어떠한 국가적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진실과 국민을 믿고, 어떤 비방 속에서도 의연히 국정에 헌신해야 한다. 그게 승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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