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벽란도 아랍상인 무역은 '사회 연대' 실천 결과물
사우디에 두 번 놀랬다. 월드컵에서 메시의 아르헨티나 격파. 37살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총리 겸 왕세자의 방한. 빈살만이 20시간 머물며 하루 잤을 뿐인데 미디어 보도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40조원 어치의 경제효과 보도가 잇따른다. 국민 먹거리 마련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인 지구촌 현실에 바이든도 시진핑도 빈살만 모시기가 대세다.
한국 방문 뒤 19일로 예정됐던 일본 방문 급취소가 한국 정부의 파격적인 예우와 묘하게 대비된다. 초특급 대우 속에서도 용산 대통령 관저의 소박한 6인용 식탁과 생수병 단독회담 사진이 주목받는다. 아랍 이슬람의 문화를 꿰뚫고 대통령실이 펼친 고도의 전략일까?
빈살만의 천문학적 경호비용과 모순돼 보이지만, 검소질박은 실용주의, 끈끈한 연대와 함께 아랍 이슬람 문화의 핵심가치다. 한국경제 활로 모색의 한중간에 성큼 들어온 아랍 이슬람의 초기 역사로 돌아가 본다.
◆이븐할둔…[무깟디마]에서 이슬람 정신 "아사비야"
'아사비야(Asabiyah, 연대)'. 이집트 수도 카이로. 남북을 가로지르며 지중해로 흘러드는 나일강 동쪽 타흐리르 광장은 수도 이집트의 심장과도 같다. 2010년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 민주화 시위 장소다. 광장 북쪽 끝에 이집트 역사를 웅변하는 고대유물의 보고 이집트 박물관이 전 세계 탐방객을 불러들인다.
광장 서쪽으로 나일강 자말릭 섬은 외교지구다. 자말릭 섬을 지나 나일강 서안은 모한데신 지구다. 카이로 다른 지역과 달리 세련된 분위기다. 이곳에 한 이슬람 학자의 동상이 서 있다. 이븐 할둔.
1332년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태어난 그의 조상은 아랍계다. 7세기 이슬람의 이베리아반도 진출 당시 스페인 땅으로 갔다. 하지만, 1248년 스페인 남부 최대의 이슬람 도시 세비야가 기독교군에 재정복되면서 튀니지로 옮겼다. 할둔은 알함브라 궁전으로 유명한 그라나다에서 활약하다 1378년 이집트에 정착한다.
당시 할둔은 카이로가 성과 궁전, 학교로 가득 찬 세계의 정원, 어머니라고 극찬한다. 오늘날 900만 명이 북적이며 뿜어내는 문명 뒤꼍의 숨 막히는 모습, 낡고 칙칙한 상황이 아니었다. 할둔은 1384년부터 1406년 사망할 때까지 카이로에서 교육에 종사하며 자서전을 썼다.
자서전 속 『무깟디마(Muqaddimah, 역사서설)』에 당대 이슬람 문화권 최고 지성으로 꼽히던 할둔의 사상이 잘 녹아 있다. 할둔은 아랍 이슬람이 단시간 내 성공한 비결 가운데 하나를 '아사비야'라고 정의했다. 척박한 사막에서 생존을 위해 부족 내 끈끈한 유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부족을 넘어 국가 건설의 동력이 된다는 통찰이다.
◆무함마드, '아사비야(연대)'로 이슬람 국가확립
570년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태어났다. 조실부모하고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아래 자랐다. 혈연이라는 끈끈한 유대의 틀 안에서 성장한 무함마드. 595년 25살 때 결혼으로 인생의 큰 전환기를 맞는다. 15살 연상의 부유한 과부 하디자가 건실한 하인 무함마드를 남편으로 맞았다.
경제적 여유를 찾은 무함마드는 아라비아 사막 부족의 현자들처럼 여름이면 동굴에 들어가 금욕, 금식 기도로 정신수양에 몰입했다. 그러던 중 610년 40살에 메카 북쪽 히라 동굴에서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꾸란(읽어라)!" 그렇게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따라 읽은 것이 이슬람 경전 꾸란(코란)의 출발이다. 깨달음을 얻은 무함마드는 당시 다신교 사회 메카에서 유일신 알라를 설파했다. 아내 하디자가 첫 신도가 됐지만, 정신이상자로 취급받았다. 619년 버팀목이던 작은아버지와 아내 하디자가 죽어 상황은 더 나빠졌다. 그때까지 신도는 10명 남짓.
622년 무함마드는 고향에서 인정받는 선지자는 없다면서 지지자들을 데리고 메디나로 피신한다. 헤지라(성스러운 도망). 이슬람의 출발이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 연대를 기초로 한 이슬람 공동체를 만들어 반대파를 복속시키고 정복지를 확대한 끝에 630년 메카에 입성한다.
아담이 건축하고 아브라함이 재건했다는 카바신전을 알라의 신전으로 바꾼다. 유대교와 기독교에 이어 인류사 3번째 유일신 신앙, 이슬람교의 막이 본격적으로 오른다. 새벽, 정오, 오후, 저녁, 밤. 5번 모스크에서 아잔(Azzan, 기도 알리는 음성)에 맞춰 기도하는 이슬람교 국가의 이후 정복사는 눈부시다.
◆이슬람 정복왕 우마르…검소질박의 대명사
무함마드는 13명의 부인을 뒀지만, 자식복은 많지 않았다. 첫부인 하디자 소생의 두 아들과 기독교 콥트교도 아내가 낳은 아들 1명은 어려서 죽었다. 무함마드가 영생도 부활도 하지 않고 단지 유일신 알라의 곁으로 간 뒤, 이슬람 공동체 움마의 지도자로 아부 바크르가 뽑혔다. 무함마드의 동료이자, 무함마드가 사랑했던 아내 아이샤의 아버지이니 장인이다.
연대의 정신 아사비야로 건설된 이슬람 공동체, 즉 단일국가 움마 지도자로 선출된 아부 바크르는 2년 뒤 634년 죽을 때까지 아라비아 반도 각지의 탈 이슬람 부족들을 제압한다. 그가 죽으면서 후계자로 지목한 2대 정통 칼리프 우마르 시기, 대외 정복의 문이 열린다.
먼저, 636년 시리아 중심지 다마스커스를 차지하고, 637년 대제국 사산조 페르시아 수도 크테시폰을 정복한다. 이어, 이란, 아제르바이젠, 아르메니아, 박트리아, 아프가니스탄의 사산조 페르시아 영역을 차례로 손에 넣는다. 638년 기독교 성지 예루살렘에 이슬람 깃발을 꽂는다.
643년 비잔틴 제국 최대 곡창, 부의 상징 알렉산드리아에 알라의 가르침을 전한다. 644년 페르시아 출신 노예에게 암살당할 때까지 우마르는 10년간 이집트의 북아프리카에서 중동지역 대부분을 정복해 1천여년 전 알렉산더의 정복에 비견되는 성과를 일궜다. 무함마드가 꿈에 승천했다 내려온 도시 예루살렘은 이슬람교에도 성지다.
뜻깊은 정복 기념행사에 우마르는 말도 아닌 낙타를 탄 채 단 1명의 시종만 데리고 간다. 화려한 옷과 연회도 물리친다. 남루한 옷에 간단한 음식만 먹은 일화는 유명하다. 검소 질박함이 제국 확대의 원동력이었다.
◆철저한 실용정신…이윤추구 정신 고려 벽란도까지
우마르가 암살된 뒤, 무함마드의 사위 오스만이 644년 3대 칼리프로 즉위해 647년 튀니지를 점령하고, 650년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을 붕괴시킨다. 680년 모로코에 이어 711년 지브롤터 해협 건너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하며 유럽대륙에도 이슬람을 이식한다. 감미로운 기타선율로 이름 높은 알함브라 궁전은 그 결과물이다.
이슬람에 귀의할 경우 민족과 인종을 가리지 않는 형제의 연대 아사비야, 군대 주둔지 '미스르' 건설로 정복지 약탈 최소화, 현지 관습과 지배집단 인정, 철저한 실용정신은 성공의 비결이다. 그리스로마 학문의 중심지 알렉산드리아 정복시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무세이온)의 서적을 모두 메카로 옮겨 아랍어로 번역한다. 이교도의 서적이라고 파괴하지 않았다. 중세 아랍 학문과 과학발전의 밑거름이었다.
중세대학은 유럽이 아닌 아랍 이슬람권 마드라사(madrassa)가 먼저다. 대수학(algebra), 연금술(alchemy), 4차산업 인공지능 시대 핵심용어 알고리즘(algorithm)은 모두 이슬람 학문에서 나왔다.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을 경우 탄압이나 학살 대신, 비이슬람교도 세금 지쟈(jizya)를 물려 포용과 경제적 이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점도 이슬람제국 성취의 중요 요인이다.
할둔은 가난을 도덕과 인간 가치의 파괴로 봤다. 가난은 죄악이었다. 할둔은 문명, 복지, 사업번창은 생산성과 노력에 달려 있는데. 이는 개인의 이윤창출이 모든 방향에서 추구될 때 가능하다고 설파했다. 근세 아담 스미스나 슘페터 등의 다양한 경제학 이론과 다르지 않다. 아랍 이슬람 상인이 신라와 고려 시대 국제항구 벽란도에 드나들던 이유가 셜명된다.
혈연중심에서 시작된 공동체 사회 연대 '아사비야', 실용적 자본주의 정신, 검소질박함 속에서 아랍과 이슬람을 이해하면 빈살만 총리가 던져준 40조원 효과를 뛰어넘는 기회를 맞이할 수도 있겠다.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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