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새 갤러리 10곳 이상 이전…12곳 남아 겨우 명맥 유지
30여 년간 대구 대표 문화예술거리로 자리해온 중구 봉산문화거리가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오랜 기간 거리를 지켜온 갤러리나 표구사, 화방 등이 떠나고 그 자리를 젊은층이 선호하는 카페나 식당들이 차지하는 모양새다.
봉산문화거리는 대구도시철도 반월당역 9번 출구에 인접한 입구에서부터 봉산오거리까지 600m 길로 이뤄져 있다. 1980년대 화랑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1991년 봉산문화거리로 지정돼 올해로 31년째를 맞았다.
봉산문화협회에 따르면 현재 이 길을 따라 자리한 갤러리는 12곳. 최근 10년새 이상숙갤러리, 소나무갤러리, 아트지앤지, 키다리갤러리 등이 이전하며 갤러리 10곳 이상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갤러리소헌&소헌컨템포러리도 다음달 웨딩거리로 확장 이전을 앞두고 있다. 또한 봉산문화거리를 40년간 지켜온 터줏대감 동원화랑은 기존 공간을 유지한 채, 현대미술 전용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지난 5월 앞산에 '갤러리 동원'을 추가로 개관했다.
표구사도 크게 줄었다. 15년 간 봉산문화거리에서 영업을 이어온 한 표구사 대표는 "남아 있는 집들 중에서도 기계 내놓은 곳이 서너집은 된다"며 "최근 영상, 설치 작품과 캔버스로만 전시하는 작품이 많아지면서 일감이 크게 줄어든 것도 영향"이라고 했다.

갤러리와 표구사들이 떠난 자리는 카페, 식당들이 채우고 있다. 시내 중심가에 비해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교통편이 좋은 데다 인근에 학교가 있어 유흥 관련 업종 대신 카페 등이 입점하기 쉬운 것이 그 이유로 보인다.
A갤러리 관계자는 "봉산문화거리 아니고 봉산카페거리 아니냐는 자조 섞인 말도 한다"며 "시내 중심가보다는 저렴하지만, 갤러리들이 임대료 상승을 버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점차 웨딩거리나 이천동 고미술거리 부근으로 갤러리들이 뻗어나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갤러리들은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라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B갤러리 관계자는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봉산문화거리의 전성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봉산미술제 때는 도로 통행을 막고 거리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거리 전체가 문화예술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회상했다.
C갤러리 대표는 "표구사들도 1980, 90년대 호황을 이뤘지만 한국화보다 서양화 쪽으로 발전하면서 많이 없어지고 굵직한 곳들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라며 "작은 골목에서 느낄 수 있었던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사라져버려 아쉽지만, 도시 개발에 따른 흐름이니 별다른 해결방법이 없지 않나"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봉산문화거리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보호기능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D갤러리 관계자는 "예술은 자본적인 논리로 따졌을 때 제일 피해를 많이 보는 분야"라며 "예술 관련 업종을 우대 입점할 수 있게 하거나, 공공 예술관련센터를 자리잡게 해 명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고 했다.
반면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 작가는 "화이트큐브의 전시장에 그림을 걸어놓는다고 인구가 유입되는 시대는 지났다. 화랑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구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김환란 봉산문화협회장은 "사실 봉산문화거리라는 타이틀만 유지한 채, 그간 시·구청 차원의 지원이나 관심이 크지 않았다"며 "지자체에 우리가 현재 처한 상황 등 얘기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나마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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