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광산 붕괴' 일주일째…"22년 지난 도면으로 허송세월 보냈다"

입력 2022-11-02 17:36:22 수정 2022-11-02 22:15:29

실종자 생사 '감감무소식'…측량·채굴 전문가 늦게 투입. 땅굴 탐지 군부대까지 동원
'시간낭비' 비난 피할수 없어
산자부, 노동부 장관 사고 일주일만에 현장 방문

2일 오후 경북 봉화군 재산면 광산 매몰사고 현장에서 한국광해광업공단 관계자들이 생존자 신호 확인을 위해 천공기 작업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2일 오후 경북 봉화군 재산면 광산 매몰사고 현장에서 한국광해광업공단 관계자들이 생존자 신호 확인을 위해 천공기 작업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2일로 경북 봉화 아연광산 매몰사고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구조당국은 연락이 닿지 않는 2명의 작업자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피가 마르는 1분 1초를 보내며 생존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소방당국만 믿고 따랐던 가족들은 생존확인용 시추작업이 연달아 실패하면서 절망감이 깊어지고 있다.

구조당국은 1차(76㎜), 2차(98㎜) 시추작업이 실패로 돌아가자 부리나케 장비를 추가 투입해 작업 속도를 높이고 있지만, '진작에' '서둘러서' 장비와 인력을 대거 투입하지 못했냐는 비판을 쏟아지고 있다.

2일 오후 경북 봉화군 재산면 광산 매몰사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광산 작업을 위해 지하갱도로 내려가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2일 오후 경북 봉화군 재산면 광산 매몰사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광산 작업을 위해 지하갱도로 내려가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안일했던 구조작업…"시간만 허비했다"

광산 매몰사고 실종자 생존 여부를 확인하는 시추 작업이 두 차례 실패했다. 구조당국은 76㎜와 98㎜관을 실종자 생존 확인지점까지 넣는 시추작업을 벌였으나, 엉뚱한 곳만 팠다. 6일의 시간이 허비됐다.

원인은 좌표 오차이다. 구조당국은 광산업체가 보관해 오던 22년이나 지난 도면을 근거로 실종자 생존 확인 시추 작업을 벌였다. 재 측량한 시추 작업 위치는 실패한 위치와 25~30m 차이가 났다.

시추 실패는 처음부터 광산 사고를 두 차례나 낸 업체를 믿고 구조작업을 벌인 구조당국의 안일한 대처 탓이 크다.

예견된 인재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당초 실종자 가족들은 "업체가 제공한 도면은 믿을 수 없다"며 "구조당국이 엉터리 자료를 믿고 시추한다"고 항의한 바 있다.

봉화소방서는 지난 1일 지난달 29일 오후 7시 20분부터 시작된 생존 확인용 76㎜ 시추작업과 지난달 30일부터 추가로 시추작업에 들어간 98㎜ 시추작업이 실종자들이 있는 지점과 접촉하지 못해 모두 실패했다고 발표했다.

뒤늦게 구조당국은 광산이 많은 강원도 삼척 등지에서 측량 전문가와 채굴 전문가 등 20여 명을 투입, 정확한 좌표를 설정하고 재 시추작업에 돌입했다. 심지어 땅굴 전문 탐지 군부대까지 동원했다. 또 시추작업도 2개(실패)에서 9개로 늘렸다. 재 시추작업에는 다시 3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구조당국은 '왜 처음부터 전문가를 동원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업체 측 도면이 오래돼 측량에 오류가 있었다"며 "첫 시추 때는 신속하게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업체 측이 가진 도면을 바탕으로 작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광산 업체가 제공한 도면은 22년이 지난 200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된 A씨(62)의 아들은 "가장 중요한 작업을 어떻게 업체 측이 제공한 자료만 가지고 진행을 한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사실상 허송세월만 보낸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구조당국은 2일 현재 76㎜ 천공기 4대를 가동 중이며 5대는 시추 준비 중이다.

당초 구조당국은 생존 확인용 시추작업이 성공하면 이 관을 통해 생존이 확인되면 구조 때까지 통신시설, 식품, 의약품 등을 내려 보낼 계획이었다.

◆일주일 만에 현장 찾은 산자부장관

2일 오전 9시쯤 광산 매몰 현장에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 장관과 이정식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장관이 방문해 구조 작업 상황을 보고 받고 실종자 가족들을 만났다.

매몰 사고가 난지 일주일만. 사고 수습과 구조의 선봉장이 돼야 할 두 장관의 행보치고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두 차례 시추 실패에 따른 '면피용 방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실종자 가족들은 "시추작업이 실패하자 뒤늦게 원망을 피하기 위해 현장에 나타난 것 아닌가. 왜 왔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산자부장관과 노동부 장관이 2일 봉화 아연광산 매몰 현장을 방문, 구조 현황을 보고 받고 있다. 봉화군 제공
산자부장관과 노동부 장관이 2일 봉화 아연광산 매몰 현장을 방문, 구조 현황을 보고 받고 있다. 봉화군 제공

이들이 현장에 머 문 시간은 20분 남짓. 두 장관은 5분간 구조 진행 상황을 보고 받고 5분간 실종자 가족들을 만난 뒤 자리를 떠났다. 티타임과 이동 시간 등을 포함해도 20여분에 지나지 않았다. 기자들의 질문에도 상황 파악을 못한 듯 제대로 답변을 못했다.

이창양 산자부 장관은 "구조에 필요한 장비를 빠짐없이 지원하겠다"며 "실종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매몰사고 진행 사항을 매일 챙겨 봤다. 구조가 늦어져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다. 반드시 구조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 중대재해법 적용 여부는 논할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광산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산자부 장관이고 근로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노동부 장관이다.

이들이 현장이 아닌 책상에서 지휘를 하는 동안 지하 갱도의 시간은 7일이 흘렀다. 갱도 안에서는 실종된 광부들이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혀 공포와 싸우며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을 시간이었는지도.

실종자 가족들은 "장관들이 '빨리 구조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해 산속의 메아리처럼 들렸다"며 "더 이상 믿을 곳이 없다"고 말했다.

장관 방문에 대해 산자부 관계자는 "실종자 가족을 격려하고 구조 작업이 늦어지는 매몰 현장의 상황을 살피고 구조 등에 필요한 조치와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시추 현장 평면도. 소방당국 제공
시추 현장 평면도. 소방당국 제공

◆"하루하루가 지옥" 애간장 녹는 실종자 가족

2일 봉화 광산 매몰현장. 구조현장 인근에 마련된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며 생존 소식만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의 얼굴에선 기대와 거듭된 실패로 인한 실망이 이어지면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실종자들보다 더 힘들겠냐"며 끝까지 현장을 지키겠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1차 76㎜ 시추작업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접한 실종자 가족들은 실의 빠졌다. 시추 실패와 미흡한 시추 작업 환경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두 번 울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여러 곳에 시추를 해서 성공 확률을 높였어야 했다. 겨우 2개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데도 왜 2개만으로 시추 작업을 하게 됐는지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라며 "제발 캄캄한 어둠 속에서 구조만을 기다리고 있는 실종자들을 생각해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봉화 광산에 매몰된 실종자의 한 가족이 구조현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윤영민 기자
봉화 광산에 매몰된 실종자의 한 가족이 구조현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윤영민 기자

이어 2차 실패 소식이 들리고 20여 년된 안전도를 활용해 시추 및 구조작업을 했다는 게 알려지자 실종자 가족들은 구조당국에 향한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실종자 가족 B씨는 "시추 확률을 높였다면 벌써 생존 여부를 확인했을 텐데 처음부터 그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시추도 다 빗나가고 측량도 뒤늦게 다시하고 시추장비도 미리 준비가 안 돼 늦어지고 구조할 있는지부터 의문이 든다"며 "애초에 전문가들이 와서 제대로 측량을 하지도 않고,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면서 지금까지 뭘 한 것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도 생존 여부 확인이 불가능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실종자 가족 C씨는 "작업에 진전이 있다는 얘기는 들리는데, 앞으로 진행할 작업 환경과 상황을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오고 있어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