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가 대구로 편입되면 모를까. 소음 덩어리인 군 공항을 반길 주민이 누가 있겠습니까."
2020년 봄 대구경북(TK) 통합신공항 이전지 선정으로 시끄럽던 당시, 꽉 막힌 형국을 푸는 단초는 군위 지역 여론을 전하던 매일신문 기사에 등장한 한 주민의 짤막한 인터뷰였다. 불가능한 상황을 가정해 푸념처럼 내놓은 그 말은 눈덩이처럼 커져 현실적인 조건으로 부상했다. 단독 유치가 아니면 결사반대를 외치던 군위 주민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수원과 광주 등 군 공항 이전을 추진하는 타 지역들이 이전지를 선정하지 못해 애를 먹을 때, TK 시도민은 기초지자체 관할구역 변경이라는 전례없는 아이디어를 꺼내 놓고 얽힌 실타래를 풀어 나갔다. 집회와 시위 등 물리적 충돌을 피하며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선 TK 시도민의 위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가 보지 않은 그 길엔 고비도 적잖았다. 특히 지난해 10월 한 차례 부결된 뒤 한 달여 숙의 끝에 다시 안건을 올려 군위 편입 찬성 의견으로 경북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한 장면은 대승적 결단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생니를 빼는 고통으로 품고 있던 기초지자체 하나를 대구로 넘겨주자는 역사적 판단 앞에 경북도의회는 눈앞의 작은 상실보다 TK의 미래를 보고 편입 찬성 의견에 손을 들었다.
이후 군위 편입은 탄탄대로를 달릴 일만 남은 줄 알았다. 정권 교체 전인 당시 야당세가 강했던 TK 지역민의 결정에 문재인 정부 역시 긍정적으로 호응했고 군위 편입을 위한 법안 발의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2020년 7월 군위 편입 합의문에 TK 국회의원 역시 빠짐없이 서명한 만큼 공인이 약속을 거스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컸다. 군위 주민이 원하고 TK 시도민을 대리하는 광역의회도 찬성한 상향식 민주주의의 전형인데, 민의를 반영해야 할 국회의원이 막아설 명분도 없다고 봤다.
하지만 일부의 우려는 기우에 그치지 않았다. 군위 편입 법안은 경북 국회의원 몇 명의 반대 기류 속에 소관 상임위 안건으로 상정되지도 못한 채 표류했다. 군위가 편입되면 경북 지역구 의원 수가 줄어들어 정치적 영향력 축소로 이어진다고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편입 뒤 벌어질 선거구 조정을 우려한 게 아니냐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보다 못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중재에 나섰고 TK 시·도당위원장을 앞세운 합의로 11월 편입 법안의 국회 통과를 추진한다는 방안을 마지못해 내놨다.
국정감사 기간을 맞아 발굴 자료와 발언을 하나라도 더 언론에 내기 위해, 꼭 사진과 함께 실어 달라는 경북 의원들은, 군위 편입 입장을 밝혀 달라는 기자 질문에 기명 보도 거부로 답하기 일쑤였다. 지난달 말 주 원내대표가 최종 담판을 하자며 언론에 약속한 시간, 장소에 끝내 경북 의원들은 '지역구에 빠지면 안 될 중요한 행사가 있다'는 등 이유로 한 명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10월 국정감사, 12월 정부 예산안 심사 등 바쁜 국회 일정을 고려하면 11월은 그 사이에 낀 군위 편입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남들이 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로 얽힌 실타래를 풀며 고비를 넘어온 TK 시·도민의 위대한 도전의 마침표를 찍는 약속의 달이다.
군위 편입은 단순히 기초지자체 하나의 관할구역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는 걸 TK 시·도민은 알고 있다. TK 신공항을 품고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의 미래를 세계로 열어 가기 위한 단초가 군위 편입이다. 경북 의원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11월이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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