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국 창립 이래 5천년 역사" 임시정부 공식 입장
상고사 쌍벽은 유가·불가…최치원 난랑비 '仙史' 기록
세조실록엔 구체적 책명…숙종까지만 전해진 사서
환단고기, 삼성기전 실려…"처음에 환인 천산에 거주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
이후 배달국·조선국 역사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세 가지 계통의 사서가 있었다고 본다. 불가계통의 사서, 유가계통의 사서, 선가계통의 사서가 그것이다. 불가계통의 사서는 삼국유사로 대표되고 유가계통의 사서는 삼국사기로 대표되며 현재는 이 양대 사서가 한국상고사의 쌍벽을 이루는 자료다.
◆불가사서, 유가사서 이외에 선가사서가 있었다
그러면 선가 계통의 사서란 무엇이며 그것이 전해왔다는 근거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최치원의 난랑비(鸞郎碑) 서문에 "우리나라에는 유, 불,도 삼교를 포함한 밝달도(風流道)가 있었고 그 교가 설립된 자세한 내용은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다."라고 했다.

여기서 최치원이 언급한 '선사'란,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평양을 가리켜 "선인 왕검이 거주하던 곳이다(仙人王儉之宅)"라고 말한 것에 비추어보면 환인, 환웅, 단군왕검을 비롯한 환국, 밝조선의 역대 선인(仙人)들의 발자취를 기록한 책이 아닐까 여겨진다.
최치원이 난랑비 서문에서 인용한 '선사'가 바로 선가의 역사서였고 그러한 선가계통의 서적들은 발해조선을 거쳐 고구려, 백제, 신라를 지나 그 일부가 한양조선 초기까지 전해졌다.

세조는 3년(1457) 5월 26일 팔도의 관찰사에게 이런 지시를 하달했다.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 조대기朝代記,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 지공기誌公記, 안함노安含老 원동중元董仲 삼성기三聖記···등의 문서는 개인 집에 간직해서는 안된다.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하도록 하고, 그들이 원하는 서책을 가지고 되돌려줄 것이다. 그것을 관청 민간 및 사찰에 널리 알리라."
세조실록에 등장하는 이러한 책들은 지금 실재하지 않아서 정확한 내용은 파악할 길이 없지만 책 이름에서 유가, 불가와 다른 선가계통의 책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양조선 숙종때 까지 전해진 선가의 역사서 진역유기(震域遺記)

규원사화(揆園史話).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약 350년 전인 1675년 숙종때 규원초당의 주인 북애노인이 저술한 책이다. 북애는 이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일찍이 국사를 써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본디 그만한 재능이 없었다.···천만 다행으로 두메산골에서 청평淸平이 저술한 진역유기震域遺記를 얻었는데 그 가운데 삼국시대 이전의 옛 역사가 담겨져 있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하고 다시 중국역사의 여러 문헌에 나오는 내용들을 발췌하여 덧붙여 사화史話를 저술하게 되었다."
삼국시대 이전의 기록이 담긴 진역유기라는 책을 어느 두메산골에서 구할 수 있었던 것이 북애가 규원사화를 저술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북애는 규원사화의 단군기 편에서 진역유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청평산인 이명李茗은 고려때 사람인데 그가 쓴 책에 진역유기 3권이 있었다. 이 책은 조대기朝代記를 인용하여 우리나라의 옛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와는 큰 차이가 있다. 그 중에는 선가仙家의 말이 많다."
북애에 따르면 진역유기는 고려 때 사람 이명이 조대기라는 책을 참고하여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정리한 책이다. 특히 북애가 "선가의 말이 많고 삼국유사와는 큰 차이가 있다"라고 언급한 것을 본다면 진역유기는 우리 고유의 선가계통의 역사서임을 미루어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북애는 진역유기가 그 내용 면에서 불교계통의 역사서들과 어떻게 다른지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다. "우리 국사는 여러번 전쟁을 겪으면서 없어지고 이제 겨우 남아 있는 것은 단지 도가와 승려들이 적어서 전한 것 뿐인데 다행히 바위 동굴에서 보존해왔다. 도가는 이미 단검 신인(檀儉神人)이 세운 원류를 계승했고 또 문헌에 남아 있는 맥을 이었으니 우리 역사를 논한 것이 승려들이 써놓은 견강부회한 것보다는 훨씬 낫다."
북애의 이 기록은 두 가지 점에서 큰 의미를 시사한다. 첫째는 내용 면에서 승려들이 지은 불가계통의 역사책과 크게 다른 선가계통의 역사서가 우리나라에 실재했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진역유기와 같은 선가계통의 역사서가 지금으로부터 350년 전인 숙종때 까지도 두메산골에 숨겨져 있어 북애가 그것을 참고할 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선가사서 삼성기전(三聖紀全)은 환인 환웅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가
지금은 고려때 이명이 진역유기를 저술할때 참고했던 조대기는 물론 숙종때 북애가 규원사화를 쓰는데 참고했다는 진역유기마저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명이 참고했던 조대기를 비롯 고조선비사, 삼성기 등 선가의 사서가 한양조선 세조때 까지도 전해진 방증을 세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환단고기에는 안함로 원동중이 쓴 삼성기전이 들어 있다. 지금 환단고기에 실려 있는 삼성기전이 원래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세조실록의 수거 목록에 등장하는 안함로 원동중이 쓴 삼성기와 동일한 책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삼성기전은 세조실록에 나오는 삼성기와 책명과 저자가 동일하고 책의 내용 또한 환인, 환웅, 단군 삼성인을 다루고 있다. 책 내용이 삼성인의 기록이고 저자가 안함로, 원동중이며 책명이 삼성기이다. 삼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진다.
그렇다면 선가계통의 사서로 여겨지는 삼성기전에서는 환인, 환국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가. 천상세계의 하나님이 아닌 인간세계의 환인씨로 보았고 또 그가 환국을 건국한 것으로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음에 환인이 천산에 거주하셨다(初桓因 居于天山)"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 "우리 환국이 건국의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吾桓建國最古)"
삼성기전은 인류역사상 가장 먼저 건국된 나라가 우리 환국이라 말했고 환인은 천상의 하나님이 아니라 환국의 국왕인 환인씨라고 하였다. 중국 역사에는 상고시대에 태호복희씨, 염제신농씨, 소호금천씨, 황제헌원씨 등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성기전은 환인은 환인씨라는 복희씨 이전에 있었던 씨족이고 환국은 환인씨라는 씨족이 세계에서 최초로 건립한 나라였다고 본 것이다.
삼성기전은 환국, 배달국, 조선국, 부여국, 동명국, 고구려국으로 건국의 역사가 이어졌다고 하였다. 단군에 의해서 건국된 조선이 우리민족의 첫 국가가 아니라 환인씨가 개국한 환국이 우리민족의 첫 국가이며 이것이 세계 최초의 나라라는 것이다.
◆한국의 첫 국가는 고조선이 아니라 환국이다
광복후 식민사관을 물려받은 일본 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출신들이 한국사학계를 장악하는 바람에 고조선마저도 부정되거나 신화로 취급을 당했다. 그러나 우리의 첫 국가는 고조선이 아니라 환국이라는 것은 민족사학의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우리 민족은 처음 환국이 창립된 이래 단군, 부여, 삼한, 삼국, 고려, 조선을 거쳐 대한민국까지 5천년에 이르렀다." 1942년 임시정부 제23주년 3,1절 선언문 서두에 나오는 말이다.
1936년 8월 29일 한국독립당은 제26주년 국치일(國恥日)에 발표한 선언문에서 "환국에서 삼한이 끝나기까지 무릇 3천여 년, 삼국(신라, 고구려 , 백제)에서 신라 말까지 무릇 1천년, 왕씨 고려로부터 이씨조선까지 각각 5백여년 지속되어 모두 5천년이다."라고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료집에 실린 이런 기록들에 의하면 한국의 첫 국가를 고조선이 아닌 환국이라고 인식한 것은 민족사학의 관점일 뿐 아니라 임시정부의 공식 입장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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