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13일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격된 고(故) 이대준씨 사건과 관련, 문재인 정부가 이씨의 자진 월북을 근거 없이 속단했다고 결론지었다.
자진 월북 가능성이 낮다는 자료를 보고받고도 당시 해경청장이 "난 안 본 걸로 할게"라며 무마를 시도하는 등 조직적 은폐 정황도 이번 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감사원은 이날 언론에 배포한 '서해 공무원 피격' 감사 보도자료에서 "월북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월북 의사 표명' 첩보와 부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자진 월북'을 속단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안보실은 (국방부 등) 이들 기관이 '자진 월북'으로 일관되게 대응하도록 방침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당국이 자진 월북 의도가 낮았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보는 분석하거나 검토하지 않았고 월북과 배치되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제외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2020년 9월 21일 이씨가 실종된 직후만 해도 월북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 것은 아니었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3시 25분 합참으로부터 조류 방향(북→남)과 어선 조업 시기 등을 이유로 월북 가능성이 작다는 보고를 받았다. 다음 날인 22일 오후 6시 36분 안보실이 대통령에게 첫 서면보고한 보고서에도 "해상 추락으로 추정돼 수색 중"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 와중에 이씨의 '월북 의사 표명 첩보'가 입수됐고 오후 7시 40분 국방부 장관에게 처음 보고됐다. 해당 첩보는 약 5시간 뒤인 다음날 23일 오전 1시 관계장관회의에서 공유됐다. 그 사이 이씨는 북한군에 피격돼 숨졌고 시신은 소각됐다.
안보실은 23일 오전 8시 30분 이씨 피살·소각 내용을 포함한 대통령 첫 대면보고를 거쳐 오전 10시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이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보인다'는 국방부(합참) 초도판단 보고가 이뤄졌다.
당시 국방부 장관은 안보실 측이 이 회의에서 군이 파악한 첩보 외 '타 승선원과 달리 혼자 구명조끼 착용', 'CCTV 사각지대에서 신발 발견' 등 다른 월북 근거도 알려줬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감사원은 이 과정에서 해경이 확인되지 않은 증거를 사용하거나 기존증거 은폐, 실험 결과 왜곡, 사건과 관련 없는 사생활을 공개했다고 지적했다.
9월 29일 2차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내부에서 월북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발표는 '월북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내용으로 이뤄졌다.
해경 관계자는 2차 발표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청장으로부터 '다른 가능성은 말이 안 된다. 월북이 맞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특히 이씨가 착용한 구명조끼에 한자(漢字)가 쓰여 있여 한국산 구명조끼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자료를 보고받고도 당시 해경청장이 "난 안 본 거로 할게"라는 발언을 했다는 진술도 확보됐다.
이씨의 자진 월북 근거를 만들기 위해 실험 결과를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감사원은 국립해양조사원(해경) 등 4개 분석기관의 표류 예측 분석·실험 결과 북측 해역으로의 자연 표류 가능성이 제기되자, 분석기관에 이를 제외한 채 결과를 제출하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또 범죄심리 전문가 7명을 상대로 이씨와 관련해 부정적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정보만을 제공하며 자문을 요청했고 이들 중 2명만 월북 가능성을 언급했음에도, 여러 전문가 의견을 짜깁기해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를 위해 월북했다'고 결론내렸다.
안보실은 24일 오전 8시 관계장관회의에서 '자진 월북 가능성이 높다'는 국방부 종합분석 결과를 다시 보고받고서 월북 여부에 대한 해경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국방부에 언론 발표를 지시했다.
감사원은 "이씨는 최초에는 월북 의사를 언급하지 않거나 왜 들어왔는지에 대한 답변을 회피하다가 거듭된 질문에 월북 의사를 표명했다"며 "북측 대남통지문 접수 후 국방부의 정보 재확인 과정에서도 자진 월북 결론에 맞추기 위해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는 내용을 포함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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