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경제] 지갑이 사라지고 있다…체크카드·신용카드 ↓ 간편결제 ↑

입력 2022-10-06 14:09:27 수정 2022-10-06 20:26:23

모바일을 이용한 주문, 예약, 간편결제 모습. 매일신문 DB

직장인 이현진(35) 씨는 휴대전화 배터리 잔량이 10% 미만일 때면 이따금 불안해한다. 중요한 업무 연락을 놓칠까 봐 걱정돼서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을 하지 못하게 돼서도 아니다. 일상생활이 마비될까 염려해서다. 이 씨는 지갑이 없다. 그에게는 휴대전화가 지갑이다. 현금은 주말마다 딸에게 쥐여주는 교회 헌금 외에는 만져볼 일이 없다. 식당에서건 카페에서건 휴대전화로 비용을 지불한다. 출퇴근을 위해 차량에 기름을 넣을 때도, 대중교통 승하차 때도 휴대전화가 결제 수단이다. 신분증도 벌써 모바일 신분증으로 대체했다.

이 씨는 "주말에 휴대전화가 방전돼 남편이 실물 카드로 결제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내 휴대전화만 켜졌어도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라는 아쉬웠다"면서도 지갑을 챙겨 다닐 생각은 않는다. "현대인 누구나 휴대전화는 항상 소지한다. 그 휴대전화 하나가 신용카드, 신분증 역할을 다하는데 거추장스럽게 지갑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소매치기가 크게 줄었다. 이른바 '현금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기술의 진보가 이제는 '현금 없는 사회'를 넘어 '지갑 없는 사회'를 불러오고 있다. 편의점이나 식당 등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비용을 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는 예가 현저하게 줄고 있어서다.

◆하루 평균 간편 결제 7000억원…지갑 대체한 스마트폰

지난달 2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전자지급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카카오페이·삼성페이 등 스마트폰에 저장한 생체정보 등을 이용한 간편 결제 서비스의 하루 평균 이용 금액은 7천231억7천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하반기와 비교하면 10.7% 증가한 규모로, 반기 기준으로 이용 금액이 7천억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용 건수도 하루 평균 2천316만8천건으로, 같은 기간 8.3% 늘었다. 간편 결제 이용금액과 이용건수 모두 2016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간편 결제는 스마트폰에 미리 저장해 둔 신용카드, 은행계좌, 충전한 선불금 등을 비밀번호 입력이나 단말기 접촉과 같은 방법으로 간편하게 결제하는 서비스다. 전자금융업자인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페이코·당근페이는 휴대전화 제조사인 삼성전자의 삼성페이 등이 대표적이다. 8월부터 국내 상륙설이 나도는 애플페이도 여기에 속한다.

간편 결제 이용실적이 늘어난 만큼 서비스 가입자 수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개 간편 결제 서비스 가입자 수 총합은 2019년 말 1억1천228만명에서 지난해 말 1억5천978만명으로 증가했다. 한 소비자가 여러 서비스를 사용한 경우 중복 집계한 수치이긴 하나 1.4배 가까운 신장이다.

가입자 수 1위인 네이버파이낸셜 기준으로 살펴봐도 2019년 2천548만8천명에서 올해 4월 3천66만5천명까지 늘어 국민 60% 이상이 간편 결제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파이낸셜 뒤로는 ▷카카오페이 2천969만명 ▷쿠팡페이 2천453만8천명 ▷11번가 1천694만3천명 ▷지마켓 1천692만2천명 ▷SSG닷컴 954만2천명 ▷비바리퍼블리카 868만7천명 순이었다.

이처럼 가입자가 늘면서 간편 결제 사업자 매출액도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간편 결제 상위 10개 사업자 총매출액이 2019년 2조6천567억원에서 지난해 7조7천383억원으로 2.9배 늘었다. 특히 우아한 형제들의 경우 2년 만에 매출이 5천844억원에서 2조292억원으로 3.47배 성장해 상위 10개사 평균보다 높았다.

◆체크카드 발급량 감소…카드 사용자 절반 "실물 카드 필요 없어"

어느 한 산업의 성장은 또 다른 산업의 쇠퇴를 의미한다. 간편 결제가 확산하면서 신용카드, 체크카드가 설 자리를 점점 잃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 6월 말 기준 체크카드 누적 발급량은 1억540만장을 기록했다. 발급량은 작년 3분기 1억7190만장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체크카드 없이 계좌를 연동하기만 해도 간편 결제 앱을 쓰는 데는 지장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체크카드 주력 고객인 MZ세대가 간편 결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각종 할인 혜택이 있는 신용카드와 달리 체크카드는 혜택이 거의 없다. 그나마 신용카드(15%)에 비해 소득공제율이 30%로 높지만 간편 결제를 쓸 때도 현금영수증 발급을 신청하면 30% 소득공제율을 적용받아 소비자 입장에서는 체크카드를 만들 이유가 점점 없어진다.

이와 함께 실물 카드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카드 사용자가 늘어나고 있다.

신용카드 플랫폼 카드고릴라는 홈페이지 방문자 2천873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5일부터 18일까지 2주간 '실물 카드가 없어도 되나?'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과반수의 응답자인 1천536명(53.5%)이 '없어도 된다'고 응답했다. '있어야 한다'고 답한 인원은 1천337명으로 46.5%를 차지, 절반에 약간 못 미쳤다. 이 역시 간편 결제가 늘어난 데 따른 현상으로 풀이된다.

전업 카드사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이다.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등으로 수익 구조가 줄어든 상태에서 간편 결제 시장까지 뺏기면서 수익성 악화에 고객 이탈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들이 모여 오픈 페이를 하려는 것도 빅테크가 주도하는 간편 결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라면서 "실물 카드 필요성이 감소하는 추세에서 고객 유인을 위해서는 많은 카드사의 참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물 카드의 퇴장은 또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끼친다. 신분증이다.

모바일 신분증·운전면허증은 정부가 개인 스마트폰에 발급하는 신분증이다. 실물 카드처럼 나오는 현행 신분증과 같은 법적 효력도 가진다. 편의점에서 주류를 구매할 때는 출생년을, 차를 빌릴 때는 운전 자격 정보만을 제공해 개인정보 노출을 최소화했다. 진위 확인이 필요하면 검증 앱을 내려받아 모바일 운전면허증의 QR 코드를 촬영하면 된다.

현재 운전면허증을 전국 운전면허시험장 27곳과 경찰서 258곳에서 발급받을 수 있으며, 정부는 앞으로 국가유공자증·주민등록증 등으로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모바일 운전면허증 전국 발급이 시작된 28일 대구면허시험장에서 시민들이 발급 받은 모바일 운전면허증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