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근 신부
사회 경제적 이유나 자연재해로 집과 나라를 잃어버리게 된 사람을 '난민'이라고 한다.
태풍 힌남노는 전국적으로 많은 이에게 상처를 남겼다. 특히 포항지역의 피해가 컸는데, 그 중에는 성당도 있었다. 마당과 1층이 전부 물에 잠겨버렸고 신자들이 사는 마을도 물에 잠겨버렸다. 이번 태풍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된 신자도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도 없고 알아낼 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희망이 없는 절망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런 절망에 희망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대구대교구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포항지역의 피해 상황을 보고받자마자 그곳을 직접 방문했고 포항시와 해당 지역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시발점이 되어 대구 경북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도움의 손길이 모였고 그것은 희망이 됐다.
또 다른 방식의 희망도 있었다. 포항지역이 물에 잠겨서 각자의 집을 챙기기 바빴던 그때 지역 성당을 도와주기 위해 가장 먼저 뛰어온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외국인 근로자들이었다. 평소 그들에게 모임 장소를 제공해주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성당을 위해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또한 가전제품이 모두 물에 잠겨 밥도 먹을 수 없었던 그곳 신부를 위해 직접 밥을 지어오기도 했다. 신부는 그들이 지어준 밥을 보자 목이 메어 먹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난민에게 가장 큰 고통은 의지할 무언가의 상실, 즉 절망이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주위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난민, 즉 '보이지 않는 난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난민'인 이유는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상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아닌 내면적으로 무언가를 잃어버렸고 그로 인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심지어 내 가족일 수도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기에 모르고 지나갈 뿐이다. '일이 바빠서', '나 하나 챙기기도 벅차서'라는 이유로 우리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난민을 모르고 지나쳐버린다.
절망에 빠진 사람은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가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내가 먼저 해야 한다.
희망이란, 내일도 내가 눈떠야 할 이유이다. 단지 죽기 싫어서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내일 하루도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가 희망이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이 나에게 있는지 확인할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내일도 눈을 떠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태풍피해로 절망에 빠진 난민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었던 사람들처럼, 우리 주위에 숨어있는 난민들에게 내일도 눈을 떠야 할 이유를 알려줄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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