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학교] 경운중·대구일중, 지역 공립 중학교의 기틀을 다지다

입력 2022-09-25 15:27:33 수정 2022-09-25 19:36:15

〈11편〉 경운중·대구일중, 다양한 변화 속에서 100년 지킨 지역 공립중
경운중, 사립 달성학교와 맞닿은 뿌리… 현재 우수한 야구부와 독서 프로그램 눈길
대구일중, 일제 관·공립여학교 감축에도 꿋꿋이… 배구부·테니스부 등 운동부 활발

경운중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경운중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일중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일중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오래된 '중학교'는 유난히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대한제국 시절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고등학교령'이나 '조선교육령' 등에 따라 중학교에서 고등학교가 됐다가 다시 중학교가 되는 등 이름이 바꿨다. 명칭 외에도 중학교는 다양한 시대적·제도적 상황에 따라 수업 연한이나 입학 방식에서 변화를 겪었다.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수차례 변화를 겪으면서도 꿋꿋이 지역 공립 중학교의 기틀을 다진 경운중과 대구일중을 소개한다.

1976년 경운중학교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1976년 경운중학교 전경. 대구시교육청 제공

◆경운중, 중학교 무시험 추첨제로 경북중에서 재개교

대구 서구 내당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인 경운중학교는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변화를 거쳐왔다. 경운중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영남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었던 사립 달성학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심상과와 고등과를 둔 달성학교는 4년제 교육기관으로 뒤에 심상과는 대구공립소학교(현 대구초등학교)로 인계됐고, 고등과는 1907년 개교한 협성학교에 흡수됐으며, 이후 일제는 협성학교를 관립 대구고등보통학교에 병합시켰다. 대구고등보통학교는 협성학교의 재학생과 물품을 인수해 1916년 5월 5년제 관립 대구고등보통학교로 설립됐다.

1, 2학년 121명으로 개교했으며, 이듬해 12월 대봉동 신축교사로 이전했다. 1925년 4월 1일에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로, 1938년 4월 1일에 경북공립학교로 개칭했다. 1943년 수업연한이 4년으로 단축됐다. 학제 변경에 따라 1946년 9월 6년제로 개편됐다가 1950년 5월 학제 변경에 따라 3년제 고등학교인 대구고등학교가 분리되면서 1951년 9월 대구제일중학교로, 1953년 6월 경북중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그러다 입시 과열을 막기 위한 중학교 평준화 조치로 1969년부터 중학교 무시험 추첨제가 시행돼 명문 공립고등학교와 붙어 있던 몇몇 중학교를 폐교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경운중 역시 경북중이 폐교하고 이름을 바꿔 재개교한 사례였다. 1972년 경북중 학생이 모두 졸업하면서 경북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경운중은 1976년 내당동으로 학교를 옮겨 지금까지 교사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역사적 관계를 갖고 있어 자칫 같은 학교로 헷갈릴 수 있지만 옛 경북중과 경운중은 다른 학교다. 경북중·고등학교 총동창회도 경북중과 경운중을 다른 학교로 인식해 경운중 출신은 경북중·고 총동창회 회원이 될 수 없으며 경운중의 졸업생 기수는 별도로 세고 있다.

하지만 경운중이 옛 경북중 역사와 관련이 깊다는 점은 사실이기에 개교년을 1970년이 아닌 1916년 대구고보 개교일로 잡고 있다. 또한 교표, 교훈, 교목 등 상징물도 옛 경북중의 것을 그대로 물려받아 진리를 알고, 옳게 생각하며, 바르게 행하자는 가르침을 착실히 실천하고 있다.

올해 제38회 대구시야구협회장기 초·중 야구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경운중 야구부. 대구시교육청 제공
올해 제38회 대구시야구협회장기 초·중 야구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경운중 야구부. 대구시교육청 제공
2019년 경운중학교 독서 프로그램 중 하나인 가을 인문학 기행 때 찍은 단체 사진. 대구시교육청 제공
2019년 경운중학교 독서 프로그램 중 하나인 가을 인문학 기행 때 찍은 단체 사진. 대구시교육청 제공

◆문무겸비 경운중의 두 가지 자랑거리, 야구부·도서관

경운중이 경북중으로부터 이어받은 것 중 하나는 바로 '열정'이다. 1954년 6월 당시 경북중 야구부로 창단이 된 학교 교기인 야구부 또한 경운중의 자랑거리다. 경운중 야구부는 1984년 일본 야구선발팀을 초청해 교류할 정도로 학생들의 열정과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6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 경운중 야구부에선 곽동현 감독을 비롯해 윤기백, 이재우, 이윤찬 코치 아래 49명의 야구 부원이 기본기를 중점으로 한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과 야구에 대한 열정을 더해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17년 제2회 범한배 영호남 야구대회 우승, 2020년 U-15 전국 유소년 야구대회 준우승, 올해 제38회 대구시야구협회장기 초·중 야구대회 우승 등 최근에도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다.

야구부와 더불어 경운중 도서관인 천지인 역시 대표적인 자랑거리다. 도서관은 2003년 학교 도서관 활성화 사업을 실시한 이래로 대구시교육청의 독서 정책과 교육과정에 맞춰 독서 교실, 작가와의 만남 행사, 도서관 활용 수업연구회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그 결과 경운중 도서관은 2007년 대구시교육청 독서교육 우수교 수상, 2010년 전국 도서관 운영평가 대통령상 수상, 2014년 대구시교육청 주관 학교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 분야에서 우수 도서관으로 선정됐다.

코로나19로 인문학 기행 등 대면 프로그램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2022년 현재 대면 모임이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독서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으며 더 많은 학생들로 북적이는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리모델링도 추진하고 있다.

조용득 경운중 교장. 대구시교육청 제공
조용득 경운중 교장. 대구시교육청 제공

조용득 경운중 교장은 "'인성과 실력을 갖춘 미래 주도 인재 육성'이라는 교육 목표 아래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우고 올바른 성장을 위해 경운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의 역할과 역량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개개인을 존중하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며 지원해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학교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1950년대 당시 대구여중(대구일중) 교정. 대구시교육청 제공
1950년대 당시 대구여중(대구일중) 교정.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일중, 일제강점기 제도적 변화 속에서 살아남다

대구일중학교의 전신은 1916년 4월 10일 현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 자리하고 있는 동인동 42번지에서 개교한 대구공립여학교다.

일제강점기 시절 여성에게 필요한 고등보통교육과 기예(技藝)를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전국에 19곳의 관·공립여학교가 설립됐는데, 대구공립여학교 역시 그 중 하나였다. 공립여학교는 1911년 8월 공포된 '조선교육령'에 따라 수업 연한 4년의 보통학교를 졸업한 12세 이상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었다.

일제는 1919년 3·1 운동 이후 일본 학제와 유사하게 제2차 조선교육령을 공포해 문화적인 회유 정책을 펼치다가 일제강점기 말미인 1938년 3월에는 철저한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꾸미기 위해 제3차 조선교육령을 공포했다.

황국신민화에 주력하고자 수신·공민·일본어·역사 등의 교과목을 개설했고, 1940년 이후엔 초등교육에 치중하기 위해 관·공립여학교의 수를 19곳에서 16곳로 줄이는 등 여성교육을 탄압하고 식민지 제도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 속에서도 대구공립여학교는 광복까지 존속해 민족정신을 전수하는 공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이후 1946년 2월 11일 중학교로 학제가 개편됨에 따라 '대구여자중학교'로 이름을 바꾼 뒤 첫 개교식을 열었다. 6·25 전쟁을 거치며 대구여중 건물은 육군본부 취하 부대가 주둔하는 주요 군사 시설로 바뀌었고, 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에는 교사(校舍)가 소실되는 등 수업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여중 학생들은 학교 인근 신천변이나 운동장에서 노천 수업을 하며 학업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소실된 교사는 1955년 7월 교실뿐만 아니라, 학생도서관, 교내 수영장, 정원 등을 고루 갖춘 교육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다 동인동이 대구 중심지로 번창하며 1984년 지금의 침산동으로 교사를 이전하게 된다. 이후 새로운 지역 발전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기 위해 개교 이래 2001년까지 여학생의 공교육을 담당하던 '대구여자중학교'는 2002년 남녀공학으로 변경해 '대구일중학교'가 됐다.

대구일중 배구부.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일중 배구부. 대구시교육청 제공
지난해 8월 강원도 양구군 양구테니스파크에서 열린
지난해 8월 강원도 양구군 양구테니스파크에서 열린 '제47회 대통령기 전국 남·여 테니스대회 겸 제50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대구일중 테니스부가 여자 중등부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일중, 배구부·테니스부 등 활발한 운동부 활동 눈길

104년 동안 모두 4만1천200명의 학생이 대구일중을 거쳐 갔으며 2022학년도 현재 952명의 학생이 '인성과 재능을 갖춘 미래인재를 육성한다'는 교육이념 아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각양각색의 체육부 활동이 눈길을 끈다.

우선, 1991년에 창단된 배구부는 1993년 제20회 회장기 전국 남녀중고 배구대회에서 처음으로 2위를 차지하며 전국대회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이후 2001년 제28회 대한배구협회장기 전국남녀 중고 배구대회에서 첫 전국대회 우승의 쾌거를 거뒀다.

이외에도 여러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고, 최근까지 춘계 전국 남녀 중고 배구대회 1위(2019년), 춘계 남녀 배구 중고 배구연맹전 1위(2020년), 제75회 전국 남녀 종별 배구 선수권 대회 우승(2020년) 등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테니스부도 빼놓을 수 없다.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연식정구로 출발해 대구경북의 여성 스포츠 선두주자로 명맥을 유지해 오다 1970년에 들어 학교 동아리 활동으로 정식 테니스부가 생겨 났다. 매년 1회 이상 전국대회에서 수상하는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특히 전국소년체전에선 1997, 1998년은 2년 연속 우승했고, 2018년에는 은메달, 2021년에는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맹활약 중이다.

1965년 창단된 수영부 역시 1996년 수영부 해체 전까지 전국수영대회에서 30여 차례 우승을 하며 대한민국 여자 수영을 주도하는 인재를 육성했다.

김보석 대구일중 교장. 대구시교육청 제공
김보석 대구일중 교장. 대구시교육청 제공

김보석 대구일중 교장은 "올해 3월 교장으로 발령을 받고 본관 건물에 적힌 '백년의 역사 미래로 나아가는 대구일중'이라는 로고를 보며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써가는 데 함께 할 일원이 돼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벅찬 감동을 느꼈다"며 "대구일중 모든 가족이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