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새책] 마음의 철학자

입력 2022-09-22 10:31:44 수정 2022-09-24 06:56:39

클레어 칼라일 지음, 임규정 옮김/ 사월의책 펴냄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키르케고르 동상.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키르케고르 동상.

덴마크 코펜하겐대 신학과에서 논문을 준비하던 한 남자는 어느 날 아홉 살 연하인 연인에게 이별을 고한다. 이별의 이유는 "그대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유행가 가사에 종종 등장할 정도로 흔한 말이 돼버렸지만, 당시 이 남자에게는 '실존'과 동일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다.

연인은 울부짖으며 매달렸지만, 남자는 "한 여인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사내를 용서하십시오"라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연인을 만나지 않았다. 이후 남자는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은 채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1813~1855)의 이야기다.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에 관한 책이다. 키르케고르는 사람은 누구나 정신성을 타고나는데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타락하고 있다고 봤다. 그에 따르면 감성과 육체만으로 사는 사람은 끊임없이 외부로 직접적인 욕구를 찾아 헤맨다. 인간이 안고 사는 모든 고뇌의 요인은 여기서 비롯된다. 유한한 세계 그 이상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성과 육체만으로 살면서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것이 대다수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다.

키르케고르 이전 서양철학은 인식론이 중심이었다. 인식론은 지식, 혹은 앎에 대한 탐구를 기본으로 한다. 그렇다 보니 인간 내면에 대한 문제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흐름에 정면으로 도전한 사람이 키르케고르였고, 그의 도전은 니체, 하이데거, 샤르트르 등을 거치며 철학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른바 실존주의다.

'마음의 철학자'는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의 삶과 저작에 대한 평전이다.

그는 짧은 생애 속에서도 무수한 저작을 남겼고, 덴마크어로 쓴 그의 저작은 전 세계로 전파됐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그는 철학에서 가장 특이한 이방인으로 남아 있다. 아들·학생·약혼자로서 비참하게 실패한 자신의 경험을 철학적 주제로 삼고, 현대인의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불안과 고뇌, 절망과 용기를 그 누구보다 깊이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생생한 삶의 실존 자체를 철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여기는 새로운 철학 스타일을 창조했다.

킹스 칼리지 런던의 철학과 교수로, 그동안 철학, 에세이 등으로 키르케고르와 관련한 책을 다수 써왔던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키르케고르의 복잡다단한 삶의 내면을 보여준다. 연대기 순이 아닌, 가장 중요한 사건에서 시작해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과거를 회고하고, 다시 시간을 앞으로 돌리는 식의 서술을 통해 키르케고르의 내면이 겪는 미묘한 감정까지도 세세히 담아내려 했다는 게 출판사 측 설명이다.

'누구로 존재해야 하는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인간으로 살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키르케고르를 만날 수 있다. 566쪽, 2만8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