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에너지 적폐’ 청산 없인 민생·안보도 없다

입력 2022-09-20 17:56:56 수정 2022-09-20 18:23:38

지난 6월 22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생산현장(원자력공장)에서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6월 22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생산현장(원자력공장)에서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부가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태양광 발전 활성화 등 전기산업 발전·기반조성을 위해 진행한
정부가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태양광 발전 활성화 등 전기산업 발전·기반조성을 위해 진행한 '전력산업기반기금사업'의 전반적인 부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국무조정실 제공]
송신용 서울지사장
송신용 서울지사장

'사우나는 1주일에 한 번만'(핀란드), '샤워는 5분 이내로'(네덜란드), '에펠탑 1시간 일찍 조명 끄기'(프랑스), '공공건물의 난방온도는 19도로'(독일)…. 권장이든 의무 사항이든 에너지가 일상에 미치는 폭발력을 보여주는 유럽의 풍경이다. 유럽 국가들은 올겨울 최악의 에너지난(難)에 대비해 전시(戰時) 같은 총력 대응 체제에 들어갔다. 다른 나라 일이라고 웃을 일이 아니다. 우리는 전기료 인상이 기정사실화되고 있어 민생에 미칠 여파가 걱정이다. 가뜩이나 물가고(苦)로 가계에 주름이 깊이 팬 가운데 공공요금의 대표 주자 격인 전기료가 다시 오르면 민생은 더욱 피폐해진다.

에너지가 민생 차원을 넘어 안보에 얼마나 파급력이 큰지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경험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독일의 경우 치명타를 맞았다. 천연가스 무기화가 장기화되자 마침내 독일 정부는 가스회사 3곳을 국유화하는 고육지책 카드를 만지작대고 있다. 또 프랑스와 영국처럼 원자력 발전 확대로 돌아서는 나라가 늘었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신재생에너지에 무게를 두다가 에너지 혹한기가 닥치자 화석 연료로 발등의 불을 끄고, 원전과의 조화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방향 전환이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최근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로 발생한 7천277억 원을 사실상의 혈세로 메우기로 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앞서 문 정부는 지난해 탈원전에 따른 비용 손실을 전력기금으로 보전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뜯어고쳤다. 월성 1호기를 서둘러 없애 전력산업 기반을 깡그리 망가뜨리고, 전기료 인상을 자초했는데 이제 그 책임마저 국민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이 터져 나온다. 엉터리 정책의 생채기와 후유증은 깊다.

태양광 발전 활성화 등을 위해 벌인 전력산업기반기금 사업은 충격이 더하다. 감사원 조사 결과 2천616억 원이 불법적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 전체 사업비 2조1천억 원의 12%에 해당하는 규모다. 무등록 업체와 계약하거나 쪼개기 수의계약 같은 온갖 불법·부당 행위가 판을 쳤다. 전국 226개 기초 단체 중 5%인 12곳, 전체 사업비 12조 원 가운데 일부만 표본으로 조사했는데 이 지경이니 '떡보다 고물'이라는 표현이 딱 맞겠다. 안보 리스크도 문제였다. 태양광과 관련한 전체 공급망을 중국이 쥐락펴락하는 사실에는 눈감았다.

더불어민주당이 태양광 발전 비리를 야당 탄압 프레임에 가두려는 건 정치 공세가 아닐 수 없다. 그제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김건희 특검법'을 언급하며 "국민이 수사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65% 정도 나온 여론조사가 있었다"라고 한덕수 국무총리를 다그쳤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법 처리'를 거론했고, 국민의힘이 '무도한 권력형 게이트'라며 특위를 구성하기로 한 것에 대한 맞불이다.

에너지가 민생과 안보를 좌지우지하는 현실에서 에너지 수급 정책이나 사업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될 일이다. 2012년 첫발을 뗀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가 유독 전(前) 정권에서 광범위하게 문제를 드러냈다면 이야말로 적폐 아닌가. 정치 지도자의 포퓰리즘, 관료의 눈치 보기, 여기에 부패한 사업구조가 얽히고설키면서 세계 최고의 한국 원전 생태계는 초토화됐고, 태양광 비리라는 괴물이 탄생했다. 보복 수사 운운할 때가 아니다. 에너지 민생과 안보의 새 출발은 '에너지 적폐' 청산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