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 한 장 깔 돈이 없어요’ 경북 포항 태풍 이재민들의 눈물

입력 2022-09-18 16:48:42 수정 2022-09-18 20:59:17

재난지원금 최대 200만원…주택 청소에도 턱없이 부족
9천여가구 침수 피해. 주택 복구 100억원 필요

포항시 남구 대송면 제네리에서 A(90) 씨가 태풍
포항시 남구 대송면 제네리에서 A(90) 씨가 태풍 '힌남노'로 엉망이 된 집을 치우고 있다. 신동우기자

"이번 폭우로 진흙이 밀려들어 벽지와 장판 다 뜯어내고 소중한 살림살이도 모두 버렸어요. 재난지원금으로는 도배조차 못해요."

18일 오전 포항시 남구 대송면 제내리의 한 마을. 진흙밭으로 변해버린 집을 치우던 A(90) 씨는 '들이닥친 큰물에 현관문조차 잠기지 않는 집에서 맨바닥에 담요만 덮고 잔다'며 한 숨을 쉬었다.

태풍 '힌남노'로 1시간당 100㎜ 이상의 전례 없는 폭우가 쏟아진 포항 대송면‧오천읍‧동해면‧구룡포읍‧장기면 등 남구지역은 성인 남성의 어깨까지 물이 들이차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포항시 조사결과 16일 현재 9천432가구의 주택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대송면 제내리의 경우 폭우로 전체 1천135가구(2천1명) 중 90% 이상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인근 마을도 100가구 정도가 침수되는 등 대송면에서만 1천가구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철강공단과 인접한 대송면 제내리는 곳곳에 대형 송전 철탑이 설치돼 있는 등 열악한 주거 조건으로 취약계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거주인구 중 30%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층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번 태풍은 저지대나 하천 인근 등 취약계층에 더 많은 상흔을 남겼다. 더러운 오수에 집 안이 모두 쓸려나간 탓에 도배와 장판을 해야 다시 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겨우 200만원 남짓의 재난지원금으로는 도배는커녕 살림살이를 재장만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행정안전부의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비용 부담 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재난지원금은 가구당 200만원이 상한선이다. 포항에는 이번 태풍에 따른 주택침수 복구에만 100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A씨는 "집이 다 젖어 말리려면 며칠간 보일러를 틀어야 한다. 그런데 보일러가 침수돼 고장 났다. 수리비용이며 난방비 부담 등 모든 것이 너무 힘들다. 재난지원금을 제발 이재민들의 실정에 맞게 현실화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포항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전국 각지 기업과 단체, 개인들로부터 성금이 답지하고 있지만(16일 현재 108여 개인‧단체 참여, 총 122억원) 이마저도 이재민들에게 돌아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재해구호협회에 모인 성금이 모두 포항지역에 투입되는 것도 아니고, 관련법에 따라 상당한 시일과 절차가 필요해 한 달 가량은 더 필요할 전망이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재난지원금의 규모와 지원대상 확대 등 특단의 대책 마련을 꾸준히 정부에 건의하고 있지만, 규정을 변경해야 하기에 당장 이번 태풍 피해에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에 포항시에서는 범국가적인 지원뿐 아니라 장판과 벽지 기부, 도배 재능기부 등 전국적인 온정의 손길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포항시 관계자는 "또다른 태풍의 소식이 이어지고 일교차가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피해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는 한시 빨리 도배와 장판 설치 등 주택 복구가 절실한 상황"이라며 "전례 없는 피해로 너무나 큰 상처를 입은 피해 주민들을 위해 뜻 있는 분들의 따뜻한 온정과 적극적인 봉사 참여를 기다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