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타버린 과수원…봄 산불이 휩쓸고 간 삶의 터전, 머나먼 복구

입력 2025-07-04 13:39:23 수정 2025-07-04 14:06:39

영남 산불, 사과부터 꿀벌까지 농업 전방위 피해
사과 1천257ha, 꿀벌 1만5천군 피해…138억 긴급 지원에도 역부족
피해면적만이 아니다…과수·양봉·시설 전방위 피해
고령농가 재기 어려워…"지원체계 근본 개편해야"

산불 화재시 진화장비나 인력이 산속으로 진입할 수 있는
산불 화재시 진화장비나 인력이 산속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임도'를 개설하는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2일 경북 의성군 괴산리 한 야산에 임도가 건설돼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대형산불은 지나갔지만, 농가는 여전히 복구의 기약이 없다. 타버린 것은 '생업'이다. 봄날 갑작스레 번진 산불은 과수원과 양봉장을 태우고 농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고령화된 농촌에서 생산 기반 붕괴는 곧 생존 위기로 이어진다.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농촌 공동체 해체와 지역 소멸 위험을 가속하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7일 대구 북구 매천동 농산물도매시장 내 한 과일 점포에서 청송 등 경북 지역에서 생산된 사과를 판매하고 있다. 사과 생산량이 막대한 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사과 공급이 다소 감소해 사과 판매 금액이 오를 전망이다. 대구농수산물 유통관리공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사과 10kg 당 평균 판매 금액은 54,852원으로 1주일 전인 지난달 26일 47,004원에 비해 7,848원이 상승해 약 1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7일 대구 북구 매천동 농산물도매시장 내 한 과일 점포에서 청송 등 경북 지역에서 생산된 사과를 판매하고 있다. 사과 생산량이 막대한 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사과 공급이 다소 감소해 사과 판매 금액이 오를 전망이다. 대구농수산물 유통관리공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사과 10kg 당 평균 판매 금액은 54,852원으로 1주일 전인 지난달 26일 47,004원에 비해 7,848원이 상승해 약 1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사과 재배지 1천257.2㏊ 피해…불타고 열에 고사하고

올해 3월 영남 지역을 휩쓴 대형 산불은 농업 전반에 심각한 피해를 남겼다. 특히 사과 주산지 중심의 과수원 피해부터 양봉, 송이버섯, 시설 농업까지 직·간접적인 타격이 컸다. 구조적 복구 어려움 속에 고령농가의 생존 위기를 막기 위한 장기적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지난달 발표한 '2025 영남 지역 산불 피해와 농업 부문 대응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산불은 경북 청송, 안동, 의성, 영덕, 영양 등 5개 시군의 사과 재배지 1천257.2㏊에 직접 혹은 간접적인 피해를 봤다. 특히 이들 지역의 사과 재배면적(9천362㏊)은 우리나라 전체 사과 재배면적(3만4천ha)의 약 28%를 차지하는 핵심 산지다.

피해 유형은 화재에 따른 과수원 전소(직접피해 472㏊)와 고열·연기 등으로 인한 생육 저해(간접피해 785.2㏊)로 구분된다.

청송군은 280.6㏊의 직접 피해와 12.8㏊의 간접 피해를 입어 총 293.4㏊의 피해가 집계됐다. 안동시는 간접 피해만 408.0㏊에 달했고, 직접 피해까지 포함해 533.1㏊의 과수원이 피해를 봤다. 의성군은 간접 피해 303.7㏊로 안동 다음으로 큰 피해 규모를 보였다.

피해 양상은 다양했다. 화염에 직접 노출된 과수는 전소됐고, 산불 중심지에서 20~50m 떨어진 지점의 나무들조차 껍질에 열상(열로 인한 균열)이 생기고 곁가지가 고사되는 피해가 확인됐다.

피해 시점이 사과 개화기와 겹치면서 수분 활동이 차단됐고, 착과율 저하 및 생육 불량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수확량뿐만 아니라 과일 품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일 경북 영덕군 노물리에서 산불피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일 경북 영덕군 노물리에서 산불피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과수와 밀접한 꿀벌 1만5천군 폐사…농업 기반시설 전방위 파괴

과수에 영향을 주는 양봉 피해도 심각하다. 산불로 인해 경북을 중심으로 1만5천군의 꿀벌이 폐사했으며, 이는 전국 사육 규모의 0.6%, 경북의 2.6%에 해당하는 수치다.

연기와 고온 노출에 따른 꿀벌 폐사뿐 아니라, 화재로 밀원식물(아까시나무 등)이 소실되면서 꿀벌의 활동성도 크게 위축됐다.

꿀벌의 감소는 단순히 양봉 수익 저하를 넘어서 과수 수분율 저하로 연결돼, 사과, 배 등 주요 과수 작물의 생산량 감소라는 연쇄적 피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KREI는 "꿀벌이 화분과 꿀을 얻을 수 있는 밀원식물의 분포 감소는 꿀벌의 개체 수 및 활동성 감소를 초래해 과수 작물 수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피해는 농업 기반시설의 전방위 파괴와 함께 더 심화됐다.

이번 산불로 농기계 1만7천158대, 과수 재배시설 514㏊, 비닐하우스 39㏊, 축사 8㏊, 수리시설(관정 등) 103곳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KREI는 "농기계, 창고, 육묘장 등 농업 생산의 핵심 기반이 되는 시설과 장비들이 산불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중장기적인 생산 차질이 불가피한 농가들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동 리버힐CC 직원들은 25일 밤 골프장으로 번지는 산불에 직접 몸으로 뛰어들어 방어선을 구축, 인근 마을과 도청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냈다. 리버힐CC 제공
안동 리버힐CC 직원들은 25일 밤 골프장으로 번지는 산불에 직접 몸으로 뛰어들어 방어선을 구축, 인근 마을과 도청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냈다. 리버힐CC 제공
28일 경북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한 마늘밭 인근 비탈이 산불에 검게 탄 가운데 농민들이 일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경북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한 마늘밭 인근 비탈이 산불에 검게 탄 가운데 농민들이 일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이·마늘·고추 등 특작물도 피해

산불 피해는 사과 이외의 지역 특산작물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특산품 주산지로서 지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주요 작물들의 생산 기반이 무너지면서 장기적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가장 주목되는 피해는 영덕군의 송이버섯이다. 영덕군은 국내 송이버섯 채취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최대 산지로, 이번 산불로 지품면, 축산면, 영덕읍 일대 약 4천㏊의 송이 산이 피해를 입었다.

송이버섯은 소나무 뿌리와 공생하는 기생성 균류로, 소나무 생태계가 유지돼야만, 자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산불로 산림 자체가 소실되면서 균근 기반이 무너졌고, 산림 생태계가 복원되기까지 최소 수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음으로 피해가 우려되는 작물은 의성군의 마늘이다. 의성 마늘은 노지 재배 비중이 높은 품목으로, 산불 당시 고열과 연기로 인한 지상부 조직 손상과 토양 피해가 발생했다. 직접적인 불길의 피해는 물론, 산불 이후 진행된 고온·건조 상태는 마늘 뿌리 생장에 악영향을 주며, 수확기 생산량의 급감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영양군의 고추도 예외는 아니다. 고추는 건조한 기후에 민감한 작물로, 고온과 산불로 인한 토양 수분 증발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정식 이후 활착과 생육 지연이 우려되고 있다.

산불로 인해 농작물 재배 지연 및 중단은 농산물 수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향후 공급 차질 및 가격 불안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이러한 작물들이 단순한 농산물을 넘어, 지역 정체성과 경제 기반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송이, 의성마늘, 영양고추는 단순 판매를 넘어 축제·관광·유통 산업과 연계된 1차+3차 융합산업 자산이기 때문에, 이번 산불로 인한 타격은 해당 지역 전체 산업 생태계의 위기로 확산할 수 있다.

더욱이 이들 특작물은 대부분 자연환경과 생태적 복원력에 의존하는 품목들이다. 복구에 수년이 걸리는 것은 물론, 지형·토양·기후 조건이 맞지 않으면 재배 자체가 어려운 구조라는 점에서, 정부의 단기 재정 지원만으로는 복원이 어렵다는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31일 청송군 진보면 기곡리에서 산불 피해 주민이 불에 탄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고 다시 지은 비닐하우스에 마늘 모종을 모은 후 물을 주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31일 청송군 진보면 기곡리에서 산불 피해 주민이 불에 탄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고 다시 지은 비닐하우스에 마늘 모종을 모은 후 물을 주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감당하기 어려운 복구…"다시 일어설 힘도 없어"

이처럼 사과, 양봉, 특산작물, 농업시설 전반에서 복합적 피해가 발생했지만, 피해 농가의 구조는 복구를 감당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고령농가가 많은 영남 내륙 지역 특성상 체력적 부담과 심리적 충격이 커, 일부 농가는 "복구를 포기하고 이주를 고려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KREI는 "고령농가의 경우 체력적·심리적 부담이 커 복구를 포기하거나 지역을 떠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농촌 공동체의 해체와 지역 소멸 위험을 가속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피해 복구를 위해 일부 재정을 긴급 투입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5년 제1회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1천64억원의 농업 분야 복구비를 편성했고, 경상북도는 농기계 구입을 위한 긴급 지원금 138억원, 산불 피해 과원을 미래형 과원으로 재조성하기 위한 '고품질 시설현대화 사업'에 254억원을 투입했다.

복구 예산은 임대 농기계 지원, 묘목 보급, 적정 착과량 확보 등을 중심으로 집행 중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지원금은 한시적일 뿐, 실질적인 영농 재개를 위한 장기 지원은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피해 유형별 맞춤 지원이 부족하고, 사후 대응 중심의 산불 대응 체계는 구조적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KREI는 향후 과제로 산불을 기후 요인에 의한 '자연 재난'으로 재분류하고, 이에 따라 재해보상과 농작물재해보험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생태 기반 산불 저감형 숲 조성과 생물다양성 확보, 과수원 재조성 시 방화선·방풍림 설치와 스마트 농업기술 접목 등 중장기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명승 제26호로 지정됐던 경북 안동시 임하면 개호송 숲이 이번 산불에 큰 피해를 입었다. 사진은 31일 촬영한 개호송 숲의 피해 모습. 김영진 기자
대한민국 명승 제26호로 지정됐던 경북 안동시 임하면 개호송 숲이 이번 산불에 큰 피해를 입었다. 사진은 31일 촬영한 개호송 숲의 피해 모습. 김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