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영 경제부 기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넉 달이 지나는 동안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은 '경제'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며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은 그간 인사 문제, 여당 내 갈등, 사정 정국 등으로 허니문 기간도 없이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국민이 기다리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 윤 대통령이 실로 오랜만에 언급한 것은 최근 대구를 찾아서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대구를 찾아 "대구가 신산업 거점으로 커 나갈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달서구 성서산업단지 내 로봇 기업 ㈜아진엑스텍에서 열린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기업이 받는 규제 압박을 모래주머니에 비유하며 "현실에 맞지 않는 한 줄의 규제에 기업의 생사가 갈릴 수 있다"며 "정부의 중요한 역할은 민간이 더 자유롭게 투자하고 뛸 수 있도록 방해 요소와 제도를 제거해 주는 것이고 그 핵심이 규제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방문 장소로 중소기업인 아진엑스텍을 찾은 이유가 있다. 아진엑스텍이 대표적인 신산업인 로봇산업의 혁신 거점이기 때문이다.
이동식 협동 로봇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아진엑스텍은 그간 본사 한 공간에 이동과 일을 동시에 하는 로봇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로봇산업의 대표적인 규제가 로봇은 이동 중에 작업할 수 없고, 사람과 분리된 공간에서 작업해야 한다는 것인데 특구에서는 법의 저촉 없이 자유롭게 로봇을 일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로봇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의 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지만 산업 현장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속도가 매우 더디다.
윤 대통령 방문 당시 지역 기업인들은 국가 로봇 테스트필드 구축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탈락해 실망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던 시점이었다. 대구테크노폴리스에 구축될 테스트필드는 로봇뿐만 아니라 IT와 소프트웨어 등 첨단기술의 실험장으로 기대를 모으는 대표적인 '신산업 탈(脫)규제 거점'이다.
그런데 비용 대비 편익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예타 문턱조차 넘지 못했으니 지역 로봇 기업인들 사이에서 "사업의 경제성을 따질 거면 민간에 맡기는 게 맞는 것 아니냐. 로봇 신산업 부흥에 테스트필드가 꼭 필요하다는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탄식이 나올 만했다.
지역 한 기업인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대구를 찾아 신산업 육성과 규제 철폐를 강조한 만큼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며 "특히 테스트필드는 국가 로봇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사업"이라고 했다.
이어 "지역에만 특혜를 달라는 것은 아니다. 전국 기업인들이 불합리한 규제에 발목 잡혀 할 수 있는 일을 못 하지 않도록 과감하게 규제를 타파해 달라는 것"이라는 바람을 전했다.
그간 신산업 규제 철폐는 정치권의 단골 구호였지만 대부분 공염불에 그쳤다. 정치인이 규제 철폐를 외치는 것을 믿고 서류를 꼼꼼히 준비해 실무 부처를 찾으면 "안 된다"는 답이 돌아온다는 얘기는 기업인들의 오랜 한숨이 섞인 말이다.
현 정부가 기업 등 피규제자 입장의 규제 개선을 위해 분야별 전문가로 규제심판관을 구성해 중립적 심사·규제 개선을 권고하는 '규제심판제도'를 운영하기로 한 만큼 기업인들의 규제 철폐에 관한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업뿐만 아니라 나라가 먹고살려면 적극적인 규제 철폐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산업 현장에서 규제 철폐를 요구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늦다. 윤 대통령과 정부는 규제 철폐 약속이 희망 고문이 되지 않도록 선제적인 규제 발굴·철폐를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