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순흥, 성리학 발상지 아냐”

입력 2022-09-16 13:36:35 수정 2022-09-18 17:08:57

한국고문헌연구소 서수용 소장

서수용 한국고문헌연구소 소장
서수용 한국고문헌연구소 소장

경북 영주 순흥은 이제 일개 면으로 전락했지만, 조선시대에는 도호부로서 풍기나 영천보다 상급의 당당했던 지방 고을이었다.

순흥이 그렇게 된 데는 고려말에 성리학을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도입한 회헌 안향의 고향이라는 것과 '정축지변'(丁丑之變)으로 순흥부가 오랫동안 혁파된 것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국가에서 인정한 최초의 사립 명문 대학이 순흥 땅에 설립되었고 지금까지 그 맥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영주시에서는 1998년에 '선비의 고장'을 등록해 선포했고, 선비촌과 선비수련원을 조성했다. 지난 9월 3일에는 선비촌과 소수서원 인근에 '선비세상 K-문화 테마파크'까지 개장했다.

선비세상이 열리던 날, 필자는 고유제를 참관한 뒤 고향 마을로 향하다 순흥면 도로 중앙 공터 자연석에 '順興 性理學發祥地'(순흥 성리학 발상지)라 새겨 세운 기념빗돌을 보았다.

아마도 새로 개장된 선비세상을 염두에 두고 행정 당국에서 건립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빗돌 뒤쪽에는 한글로 '순흥 성리학의 발상지'라 썼다. 어떤 연유에선지 글씨를 쓴 분이나 건립 주체, 연월일은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건립 내력을 확인할 필요조차 없이, 이 빗돌 하나로 그간 수립했던 선비의 고장 표징이 단번에 무너져 내린 듯한 느낌이었다.

성리학은 중국의 남송 당시 회암(晦菴) 주희(朱熹)에 의해 완성된 성명과 이기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를 달리 주자학(朱子學)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학자들은 고려말 성리학이 도입된 이후 중국에 못지않은 학문적 축적이 있었다. 그 일례로, 소수서원 사액(賜額)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던 퇴계 이황을 '주자학을 집대성한 분'으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논박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나, 확언컨대 성리학의 발상지는 주자의 고향인 중국 복건성 남평시, 또는 강서성 무원 일대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 있다면 중국의 주자에게는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이 있다. 무원에는 주자의 기념관인 '희원'(熹園)이 있다. 이곳들 역시 성리학 발상의 중요한 한 거점임에 분명하다.

순흥을 '성리학의 발상지'라고 우기면 우선은 시원할지 몰라도, 독도와 고구려 옛터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일부 극우 세력이나, 중국의 동북공정 일파의 왜곡과 억지를 선비의 고장 영주에서 따라서 한 셈이 된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답은 하나다. 조속한 시일 내에 그 잘못을 인정하고 빗돌을 제거할 일이다. '감격적 애향주의'는 통하지 않는다. 반선비적인 무지의 소치요, 용감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도 아닌 안향 선생의 학덕이 남아 있고 단종 복위의 충절을 증거하고 있는 고장인 영주, 순흥에서는 다시 있어서는 안 될 뼈아픈 과오다.

추석 연휴 나흘간 4천여 명의 관람객으로 북적였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들 또한 오가면서 이 빗돌을 스쳐 지나갔을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섰다.

영주시청 공무원들과 담당 학예사, 지역 대학의 교수, 교사, 향토사가, 유림 지도자들은 이 사태에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한번 물어나 보고 싶다.

순흥 빗돌
순흥 빗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