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 문화평론가
요즘 내 친구들 사이에서 '국뽕'이 대세다. 방역, 반도체, K팝 정도에서, 최근에는 K드라마와 방산, 우주개발까지 영역이 점차 넓어지는 모양새다. 그리고 여기에 절대 빠지지 않고 소환되어 씹히는 국가가 일본이다. 우리는 이렇게 잘 나가는데, 일본은 망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통계적으로 한국의 PPP(구매력 평가)가 일본을 넘어선 것은 명백한 사실인 것 같다. 일본이 우리보다 인구가 2배 이상 많고 노인 비율이 높다는 사정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최근 경제 위기에 박살나는 것은 일본이나 우리나 도긴개긴이기는 한데, '엔'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끄떡없던 안전자산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확실히 일본의 체력이 많이 약해졌다 싶다. 어마어마한 대외순자자산 때문에 절대 흔들릴 리 없다던 일본의 경상수지도 최근에는 심심찮게 적자를 찍는다. 그 외 급락하고 있는 노동생산성이나 IMD국가경쟁력, 지난 30년간 전혀 오르지 않은 임금과 물가, 천문학적인 국가부채 등등 일본경제의 암울함을 나타내는 지표는 차고 넘친다.
여기에 더해 일본 특유의 폐쇄성은 국뽕에 취한 친구들의 또 다른 안줏거리가 되곤 한다. "이 자식들, 아직도 관공서에서 플로피디스크를 쓰더라고.", "신칸센 개찰구 장비를 유지·보수하는데 매년 몇 백억의 예산을 쓰고 있다는 거야. 우리처럼 그냥 없애면 그만인데.", "인터넷뱅킹 안 하고 아직 창구업무 보는 거 좀 봐." 여기까지 오면 나 역시도 한 마디를 보탠다. "최근 일본 영화를 보면 얘들 인권감수성 수준이 형편없이 낮아져 있어. 우리나라 같으면 큰일 날 90년대식 성적 조크 같은 것들을 아직 하더라고."
그런데 정작 내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위기에 대응하는 일본의 방식이다. 흔히 일본은 구조조정에 실패한 국가라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일본은 구조조정에 실패했다기보다는 최소한만 하기로 스스로 선택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노조는 춘투를 예전에 멈추었고, 기업 또한 저임금을 주는 대신 최대한 해고하지 않는 경영으로 화답해왔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혼다 소이치로나 이나모리 가즈오는 "자르지 않을 테니 어떻게든 함께 해봅시다"라고 외친 리더들로 유명하다. 비웃음의 대상이 된 플로피디스크와 개찰구, 그리고 은행 창구는 역으로 말하면 그런 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도 아직 해고되지 않았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우리처럼 다 내치고 휙휙 갈아엎고 그 과정에서 슈퍼K기업 몇 개 만들어놓고 자위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예전 같지는 않을 지라도 모두가 다 같이 고통을 분담하며 어떻게든 국민 일부의 도태를 막고 있는 형국처럼 보이는 것이다.
국뽕에 찬 나와 친구들은 그래서 꼴이 매우 우습다. 나라가 어려워도 내가 취업이 되어 있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내가 '없어진 개찰구 신세'라도 국뽕에 차오르는 것이 좋은가. 그러자 한 친구가 말한다.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냐? 뽕이라도 맞고 시름을 잊자는 거지." 그래! K님 덕에 나발이나 실컷 불어보자! 국 to the 뽕 to the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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