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댄스' 교육 거리큘럼으로…'어머니 매스 게임' 전국적 화제
"1950~1980년대 대구에서 무용 교육이라 하면 바로 '임띠' 선생이 제일 이름났었어요. 대구·경북에서 활동한 대부분의 무용 교사들을 길러낸 사람인데, 그 사람 이름을 잊으면 안돼요." '임띠'는 바로 임성애(1921~2006, 전 경북대 체육교육과 교수)이다. 원로무용인 김기전 선생님은 '임성애' 교수를 꼭 기억해야 할 인물로 꼽았다.
경북대 음대 학장을 지낸 영남오페라단 김귀자 단장도 "저의 여고 시절부터, 신명여고의 '임띠' 선생님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어요. 이후 경북대 교수로 계시면서도 활약이 대단하셨으니, 대구에서 예술을 전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분의 이름을 기억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지금의 중장년층들은 학창 시절 무용 시간에 '포크댄스'를 배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포크댄스'를 무용 교육 커리큘럼으로 가르친 사람이 임성애 교수이다. 대구희도보통학교와 대구신명여학교, 일본여자체육전문학교를 졸업한 임성애 교수는 대구 공교육에서 처음으로 무용 교육을 시작한 인물이다. 김기전 선생의 표현대로 '대구의 중고등학교 무용 교사는 대부분 그의 제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방 이후 무용 교육은 '학원' 혹은 '교습소', '연구소'라는 이름의 사교육에서 이루어졌다. 공교육 속에 '무용'을 예술로 분류해 교육하기 시작한 것은 1965년 경북예술고등학교 설립 이후로 보기도 한다. 대구에서 무용으로 학위를 받은 교수들과 함께 '무용 전공'이 본격화된 것은 1974년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체육학부에 체육무용학과가, 1984년 계명대 체육대학 내에 무용학과가 개설된 이후부터다.
임 교수는 그보다 훨씬 앞서 1942년부터 1960년까지 신명여중고에서 무용을 가르쳤다. 이후 1961년 경북대 사범대학 체육교육과에 부임하면서 '체육 무용' 전공자들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포크댄스 등 서구 무용을 받아들여 커리큘럼으로 활용했다. 임 교수의 제자 중 활발히 활동한 인물은 박순이 전 대구교대 교수, 임혜자 전 계명대 무용학과 교수, 김정자 전 경북대 강사 등이 대표적이다.
김기전 선생은 "1981년 대구시립무용단을 창단할 때만 하더라도, 전문 무용수가 없어서 학교 교사들을 불러서 무대에 세워야 했는데 임 교수가 제자들을 많이 배출해두셨으니, 무용할 수 있는 교사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임성애 교수는 또 대구‧경북의 35세부터 45세의 여성들을 모아 전국체육대회 무대에 선보이는 등 생활무용 인구의 저변을 넓힌 인물로도 손꼽힌다. 특히 1959년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제40회 전국체육대회 공개 행사에서 160명의 여성들을 모아 '어머니 매스 게임(mass game)'을 발표하면서 전국적인 화제를 모았다.
또 1964년 제45회 전국체육대회 공개행사에서는 공 체조를 선보이기도 했다. 참가한 여성들은 대구‧경북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자신의 제자들과 그들이 소속된 초등학교의 학모들이었다. 그는 1970년대까지 꾸준히 '매스 게임'을 선보였고 많을 때는 600여 명의 매스 게임을 안무했다.
무용평론가 고(故) 정막 선생은 저서 『대구 춤 60년사』에 임성애 교수를 소개하면서 "체육과 무용은 인간의 육체가 주체가 되는 것이기에 한 지붕 아래 살아왔다. 더 빨리, 더 높이, 게다가 더 아름답기까지 발전한 체육, 피겨스케이팅은 예술이 되었다"고 적고 "이 분야 선각자 임성애 선생은 비록 무용과를 창설하지는 못했지만, 평생 경북대 체육과에서 평생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며 체육 무용계에 기여한 공이 크다"고 평가했다.
최근 김기전 선생이 임성애 교수의 유족을 통해 그의 활동을 돌아볼 수 있는 앨범들을 입수해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에 기증해주셨다. 그 앨범에는 임 교수가 신명여학교 시절 출연한 군무 장면을 비롯해, 임 교수가 진행한 학교 무용 교육의 여러 장면들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 한 기록들이 남아있었다.
또 '어머니 매스 게임'을 준비하는 과정도 아주 자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임 교수는 안무 노트에 '중년 여성들의 단순한 여가 선용과 교양을 위해 시작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우아하고 아름다운 표현력을 길러주고 신체를 단련하면서 사회에 이바지까지 하게 됐다'고 적었다. 임 교수는 1981년 회갑 기념공연에서 처음으로 '창작무용 발표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임성애 교수의 활동을 정리하다 보니 이달 28일 어울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안은미무용단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공연 소식이 눈에 띄었다. 안무가 안은미는 어르신들의 '막춤'을 '몸동작의 수집'으로 구성해 예술 작품으로 훌륭히 승화시켰다. 이 시대 무용가들은 60여 년 전 '포크댄스'와 '어머니 매스 게임'을 어떻게 해석할까. 이 또한 지난 시대와 함께 '수집·기록되어야 할 몸동작'이 아닐까 싶다.
임언미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장, 대구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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