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박노익(꿈터장애인활동지원센터 센터장) 씨의 어머니 고 문창옥 씨

입력 2022-09-08 12:38:36 수정 2022-09-08 17:21:30

"엄마 그곳에 잘 계시나요…다음 생에는 당신이 원하는 삶 꼭 이루시기를"

처녀 시절의 어머니 문창옥 씨(사진 왼쪽)와 친구. 가족 제공.
처녀 시절의 어머니 문창옥 씨(사진 왼쪽)와 친구. 가족 제공.

어머니! 잘 계시는지요? 당신이 떠나신지 벌써 2년이 흘렀습니다. 당신께서는 코로나19가 창궐할 때 홀연히 세상을 등지셨습니다. 작별 인사도 없이, 자식들은 당신의 마지막 임종도 보지 못한 채 저희 곁을 떠나가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삶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강했던 나의 어머니 문창옥 여사, 당신께서는 시대를 잘못 타고나 당신의 꿈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하고 평생 필부필부(匹夫匹婦)로 사시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당신께서 떠나신 지금 당신의 그 강렬했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살아생전 살갑지 못했던 이 막냇자식이 그리움과 후회하는 마음을 담아 당신께서 이승에 남긴 발자국을 간략하게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어머니 당신께서는 일제 강점기인 1933년 6월 3일 경북 성주군 용암면 상신리에서 남평 문씨인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김순이 여사의 무남 6녀 가운데 다섯째 딸로 태어나셨지요.

외할머니께서는 딸만 줄줄이 여섯을 낳으시고 아들을 못 낳은 탓에 집안 어른들로부터 쫓겨날 정도로 무척 구박을 받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당신을 포함한 여섯 딸을 모두 20리 밖 소학교(초등)에서 신식교육을 받게 했다지요. 학교를 졸업하신 당신께서는 한글은 물론 일본어와 한자까지 깨우치셔서 친구들에게 뽐내고, 자랑하며 자부심이 높으셨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 당신께서 불러주시던 일본 노래는 아직도 제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아버지 고 박상동 씨
아버지 고 박상동 씨

그렇게 현대 교육을 받은 당신께서는 당시로써는 다소 늦은 나이인 24세에 농사를 지으시는 저의 아버지(박상동, 2005년 작고)와 1955년 혼인하셨지요. 결혼 후 가난한 살림에 실망하시고는 시아버지를 설득해 대구로 이주한 것은 큰 사건이었습니다. 갓 결혼한 새댁이 시부모의 두꺼운 유리 벽을 깨트린 것이었습니다. 대구에 입성한 당신께서는 아버지를 택시기사로 취직시키시고, 당신께서는 화려한 도시 여성으로 변신을 꿈꾸셨지요.

하지만 이러한 꿈도 잠시, 집안의 장남이셨던 아버지께서는 할아버지 병환 소식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다시 고향으로 귀향을 하셨지요. 훗날 당신께서는 이때를 가장 후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당신께서는 성에 차지 않았지만, 농사를 지으며 우리 3남매를 낳고 키우셨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인가요? 당신께서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장에가시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이런 당신의 모습이 부끄럼도 자랑도 아니었지만, 이때 저는 당신께서 평범한 분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시다 1981년 당신께서 쉰의 나이에 자식 교육을 핑계로 다시 가산을 정리해 대구로 이사를 하셨지요. 당신의 2차 도전은 생각처럼 녹록치 않으셨습니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고 설상가상 아버지께서도 돌아가시고, 당신도 속절없이 노년을 맞았습니다.

당신의 노년은 참담했습니다. 걱정하던 치매까지 찾아와 가족들은 힘들어했습니다. 쇠퇴한 양반가 다섯째 딸로 태어나 한 남자의 아내로, 3남매의 어머니로 화려한 삶을 꿈꾸셨던 당신께서는 결국 단풍이 곱게 물든 2020년 11월 3일 뇌경색과 폐렴으로 쓸쓸히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향년 88세.

당신께서는 갑작스레 저희 곁을 떠나간 직후에는 사실 담담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고향 땅에 모시고 뒤돌아 오는 순간 막혔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함께했던 60여 년의 세월, 다음 생에는 꼭 당신이 원하는 삶을 이루시기를 속으로 빌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나의 훌륭하신 어머니셨고 이제는 좋은 모습만 추억으로 간직하려 합니다. 어머니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러브레터의 대사처럼 '엄마 그곳에 잘 계시나요'(오까상! 오겡끼데스까!')하고 목청껏 한번 볼러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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