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층적 위기 중첩된 가정 관리 못 받아 사건 이어져
점점 늘어나는 대구 위기가구… 관리 없다면 재발 우려
비극이 일어난 건 지난해 8월 30일 새벽이었다. 대구의 한적한 주택가에 경찰차들이 몰려들었고, 곧 현행범으로 체포된 10대 소년 두 명이 호송차에 올라탔다.
형인 A(당시 18세) 군은 잔소리가 심하다는 이유로 화가 나 당시 77세였던 친할머니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했다. 이를 목격한 할아버지마저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B(당시 16세) 군은 소리가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창을 막는 등 형의 범행을 도왔다.
그로부터 1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위기 가구'에 대한 대응이 중요하지만,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존속살해 형제, 위기관리 받았다면…
30일 찾은 대구의 사건 현장은 스산했다. 조부모와 형제가 살던 작은 집은 완전히 철거된 상태였다. 검은 대문은 자물쇠가 걸린 채 굳게 잠겨 있었다. 문 너머에는 차 한 대와 빈 수레 등 잡동사니만 널려있었다. 1년 전까지 이곳에서 사람이 살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현장에서 만난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사건을 언급하길 꺼렸다. 인근 주민 C씨는 "사건이 나고 주민들끼리도 그냥 쉬쉬하다가 1년이 지나갔다. 조용한 동네였는데, 그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걸 애써 기억하거나 언급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이 가족의 행방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형 A군은 징역형 형기를 살고 있지만, 집행유예로 나온 B군은 타지역으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을 통해 형제를 돕겠다고 밝힌 친모와 외할머니 등이 도움을 주는 것으로 전해진다. 살아남은 할아버지도 서구의 한 요양원에서 지내다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현장에서 사건을 지켜본 관계자들은 형제들이 보통 사람과는 다소 달랐다고 입을 모은다. 오랜 빈곤 속에 정서적 문제를 겪어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특히 ▷고령의 노인이 꾸려나가는 조손 가정 ▷정신적 문제를 겪던 학교 밖 청소년 ▷저소득에 주거 빈곤까지 다층적인 위기가 중첩된 가정이었음에도 특별한 조치를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형 A군은 중학교 때부터 아동발달센터 심리치료를 받았고, 동생 B군도 정신과 치료 이력이 있었다. B군은 학교에서 위협적인 행동을 해 퇴학당한 상태였다. 검찰은 재판에서 "조사를 받으며 이들이 '웹툰을 못 봐 아쉽다'고 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하며 형제를 직접 체포했던 전직 경찰관 D씨는 이들이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관리를 받았다면 없었을 불행한 사건이었다고 증언했다.
D씨는 "(형제가) 부모 보호도 없이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했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자 학교 밖 청소년인 위기 가정이었음에도 기관의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참혹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 늘어나는 대구 위기가구, 발굴도 어렵다
재판은 끝났고, 당사자들은 모습을 감췄지만 지역사회에는 큰 숙제가 남았다. D씨의 말처럼 이 사건이 심각한 위기에 처한 가정을 올바르게 관리하지 못해 발생한 사건이라면, 현재의 복지 체계로는 언제든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구의 위기 가구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사회보장연구원 자료를 보면 지난 2016년 5천646가구였던 대구의 위기가구는 2020년 4만1천843가구까지 폭증했다.
실제 위기 가구는 이 통계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 빈곤에 따른 시선이 두려워 은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사회복지 현직자들의 설명이다.
대구 한 복지재단 가족센터 관계자는 "예산이나 인력이 모자란다는 일반적 인식과 달리 언제든 심리 지원을 비롯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위기가구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며 "위기가 있는지 없는지, 어떤 위기를 겪고 있는지 발굴 자체가 어려우니 지원하기도 힘들다. 이 사건처럼 이슈가 됐을 때 비로소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위기가구 관리해야… 없다면 유사 사건 재발 우려"
특히 교육 측면에서 형제가 '학교 밖 청소년'이 된 뒤 급격히 상황이 악화됐음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학교에서 그나마 정서적 관리를 받아왔지만 밖으로 나와서는 지역사회의 관리 체계로 편입되지 못했고, 결국 범죄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임성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장은 "이 형제도 중학교 때까지는 복지사들의 극진한 돌봄을 받았다고 하는데 고등학교에 가서 이 돌봄이 끊어지자 문제가 생겼다. 결국 이 문제가 퇴학과 범행으로 이어진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대구시교육청에서는 지금까지 사후 대처에만 그쳤던 '위기관리위원회'를 올 초부터 한 학기 4차례씩 열어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을 사전 발굴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에서 학생들을 관리할 복지사들의 수는 부족하고,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정서적 관리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은구 계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위기 가구 청소년은 부모의 관리에서 벗어나 정서적 불안을 느끼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주변 환경이 나쁜 경우가 많다"며 "사회 안전망의 초점을 경제적 측면은 물론, 정서적 측면에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 가족과 청소년 등 위기가구 전반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있는 통합복지센터를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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