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욱 시인, 대구문학관 상주작가
로마시대 검투사를 그린 드라마나 영화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걸 보면서 다들 궁금해 하던 질문 하나가 있었다. 과연 실제 검투사들도 저렇게 섬세하고 멋진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을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실상은 조금 달랐다. 근육도 근육이지만 두둑한 뱃살도 반드시 필요했다고 한다. 날카로운 칼끝으로부터 장기의 치명적인 손상을 피하기 위해서였단다. 뭐랄까, 기대했던 모습과는 달랐지만, 따지고 보면 생존이 걸린 상황인데 그깟 뱃살쯤이 대수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뱃살이 두둑한 검투사들이 그런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모습은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름대로 흥미로울 순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어색할 것만 같았다. 처절한 운명의 기로 앞에 선 주인공들이, 뱃살이 출렁이는 몸으로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라니. 그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최대한 멋진 탄성을 일으켜야 할, 그런 영화 속 명장면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오히려 리얼리티의 측면으로 보자면 과거 1950, 60년대 검투사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조금 더 사실적인 검투사의 몸에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그때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지금같이 모든 근육을 조각처럼 발달시킨 몸을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검투사 영화뿐만 아니라, 실은 당시 거의 모든 영화나 드라마가 그랬다. 아무리 유명한 배우일지라도 지금과 같은 근육질의 몸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육체가 점점 더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알다시피 이들 '대중문화' 산업에 더 큰 규모의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면서다. 말하자면 비싼 돈을 들여 만들수록 그 속에 등장하는 '몸'들도 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는 비단 '몸'뿐만 아니라 '얼굴'이며 '행동'이며, 눈에 보이는 모든 외적 부분들이 감탄의 대상이 돼야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래야만 관객들이 감탄의 대가로 지갑을 열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그러다보니 그 감탄의 기준 역시 나날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는 데 있다. 이전 시대와 오늘날 배우들이 지닌 몸의 차이도 아마 거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몸이든 뭐든 웬만큼 멋지거나 아름답지 않으면 감탄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자기관리에 철저한 일반인들도 충분히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외형을 가꿀 수 있는 시대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도 대규모로 투입된 자본과 인력으로 인해 그만큼의 대가를 받아내야 하는 이들은 과연 이전보다 얼마나 더 감탄스러운 외형을 보여줘야 하는 것일까.
갈수록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가꾸는 배우나 연예인들을 볼 때마다 로마시대 검투사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뼈를 깎는 고통마저도 감내하는 그들의 모습이 꼭 생존의 기로에 선 검투사 같아서만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새로운 감탄을 기대하고 있는 내 모습이, 로마시대 피에 열광하던 군중의 모습을 어느 영화보다도 실감나게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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