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준 서울뉴스부 차장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는 2024년 4월 10일까지 대한민국에서는 전국 단위 선거가 치러지지 않는다. 국민이 국정 운영 성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묻는 직접적인 계기가 없다는 의미다. 반대로 정치권엔 여론의 동향에 구애받지 않고 뜻한 바를 관철할 수 있는 시간이다.
민심은 천심이고 '민(民)이 정치의 주인'(아리스토텔레스)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비추면 '암흑의 시기'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일각에서 팬덤(fandom)과 중우(衆愚) 정치의 폐해를 고발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요긴한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겠다. 우리 정치권의 애국심과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간으로 규정하고 예의 주시하고자 한다.
국운을 가를 현안이 국내외에 산적하다. 우선 먹고살기가 힘들다. 전 세계적인 공급망 경색과 인플레이션, 선진국 경기침체, 미·중 갈등 등 외생 변수가 수출 주도형인 대한민국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국내에선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 위기에 코로나19 재확산 조짐까지 더해지면서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살아남기조차 힘든 실정이다.
죽고 사는 문제(안보)도 심상치 않다. 추가 핵실험을 벼르고 있는 북한은 최근 대남 강경 발언 수위를 높이는 중이다. 양안 관계(중국 vs 대만)가 틀어지면서 동북아 정세도 불안감이 고조되는 시점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현실은 암담하다. 여야 모두 내부 권력 투쟁에만 골몰해 있다. 특히 국정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할 집권당의 모습은 가관도 아니다. '생니'를 뽑느라 국정 현안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내부에서조차 '내년에 총선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라는 자조가 나온다. 역대 보수 정당들이 적어도 경제와 안보 영역에서만큼은 비교우위를 보여 왔던 점을 회고하면 더욱 안타깝다.
정치권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모래주머니 규제' 혁파를 약속하고 여당 대표가 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만 해도 '보수 정권이 이름값을 하겠구나!' '여권이 선거 없는 기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구나!'라는 평가가 나왔다. 여야를 막론하고 당면한 선거에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피하고 미뤘던 '뜨거운 감자'를 공론화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 산업구조는 정보통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융·복합의 시대를 달리고 있는데 관련 규제는 산업 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끝이 뻔히 보이는 연금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세대 간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 지도 오래다. 문화산업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달라져야 하고 제조업 전성 시대에 구축된 노동시장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선거가 없는 기간이라 권력 놀음에 취해 맘껏 분탕질을 해도 당장의 심판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 기록으로 남는다. 선거에 임박해 헬리콥터에서 '당근'을 살포하면 된다는 얄팍한 마음가짐은 아니길 바란다. 유권자들은 개돼지가 아니다.
역사는 선거가 없는 금쪽같은 시간에 윤석열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평가할 것이다. 다행히 이 기간은 새 대통령이 소신을 펼칠 수 있는 임기 초반과 겹친다. '선출직 0선'으로 기존 정치권과 거리를 뒀던 대통령 후보에게 성원을 보냈던 국민들의 간절한 마음을 국정 최고책임자가 헤아리길 기대한다.
초등학교 취학 연령 하향 정책 같은 '뜬금포'로 허비하기에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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