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입력 2022-07-27 13:42:04 수정 2022-07-28 19:24:24

영화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사는 집중력 있고, 전투 장면은 스피드가 넘치고 스펙터클하다. 캐릭터 또한 적재적소에서 긴장감을 뿜어낸다.

충무공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 중 '명량'(2014)에 이어 두 번째로 선을 보인 김한민 감독의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은 전작의 아쉬움들을 최대한 보완한 성공적인 속편이다.

1592년 음력 7월에 펼쳐진 한산도대첩을 소재로 하고 있다. 명량대첩 5년 전으로 임진왜란 발발한 해에 일어난 해전이다.

영화는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변요한)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다. 그는 용인 전투에서 일본군 2천명으로 조선군 5만명을 격퇴한 장수이다. 이순신을 격퇴시켜 보급선을 확보하겠다는 결의에 찬 편지다. 그는 파죽지세의 자신감에 가득 찬 인물이다.

그리고 거북선의 위력을 패잔병으로부터 듣는다. 듣도 보도 못한 귀신을 만난 듯 왜군은 겁에 질려 있다. 그 자리에서 패잔병들을 죽여 버린다.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공포라는 것을 안 것이다.

영화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의 시작은 영리하다. 거북선의 위력을 왜군의 입장에서 들으며 그 공포의 강도를 높였고, 그가 만날 공포의 대상 이순신(박해일)에 신비감을 불어 넣는다. 그는 아직 이순신을 얕보고 있다. 왜군은 부산포에 상륙한 지 20일 만에 한양을 점령했다. 왕 선조는 도읍을 떠나 평양으로, 의주로 피신해 버렸다. 남은 것은 관군이 아닌 의병이 고작인 나라에서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누구나 싸우기 전에는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만날 조선의 장수는 이순신이었다.

영화는 와키자카와 이순신을 대립시키며 용인의 전황을 한산으로 옮기는데 주력하고 있다. 용인전투는 최악의 전투였다. 이에 대한 분을 삭이며 한산에서 대폭발시키는 것이 영화의 주안점이다.

수군이 버티고 있지만, 조선의 명운은 경각에 달려 있었다. 병사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고, 거기에 경상우수사 원균(손현주)과의 대립, 거북선의 손상과 약점 노출 등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해저에 내린 닻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결전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는 의(義)를 내세운다. 의와 불의의 전쟁이라는 것이다. 의로움 만큼 강력한 대의명분이 있을까.

영화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전작의 스토리가 다소 어수선했다면 '한산'은 명료하다. 결전을 준비하는 두 진영의 긴박함과 첩보전에 총력을 기울인다. 거북선의 설계도가 넘어가고, 준비 중인 학익진의 진법도 와키자카가 간파한다.

'한산'은 왜군 진영의 움직임에 더 포커스를 맞췄다. 와키자카와 지원군으로 온 가토 요시아키(김성균)의 갈등, 이순신에 감복해 투항한 항왜 준사(김성규), 히데요시의 책사인 구로다 칸베에(윤제문)의 등장 등 왜군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반면 조선 수군은 원균과의 갈등이 고작이다. 관객에게 익숙한 캐릭터를 부연 설명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영화는 1시간 15분에 걸쳐 이러한 드라마에 공을 들인다. 그리고 이순신의 내면도 이미지화 한다. 바로 꿈속에서 본 거대한 벽이다. 함경도의 설원과 눈발 사이로 치솟아 이순신의 앞을 막아서는 거대한 장벽이다. 그는 이 벽을 넘어야 한다. 아니 내가 벽이어야 한다.

긴장감이 어느 정도 숙성됐을 때 기다렸던 해전이 시작된다. 전체 러닝타임 130분 중 60여 분을 해전에 투입한다. 해전은 마치 헬기로 중계하듯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이순신의 학익진과 고기 비닐처럼 겹친 와키자카의 어린진이 넓은 바다에 그대로 펼쳐져 진법에 대한 설명이 없어도 선연하다. 대형선인 판옥선에 비해 속도가 빠른 왜군의 세키부네의 기능성도 확연하게 보여준다. 배 바닥이 평면인 판옥선은 암초에 강한 반면 뾰족한 세키부네는 암초에 끼인다. 화포의 위력도 압도적이다. 특히 비장의 무기 거북선이 등장할 때는 가슴이 벅차오른다.

영화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들의 혼신의 연기가 돋보인다. 특히 항왜 캐릭터인 김성규의 연기가 돋보인다. 이순신을 연기한 박해일은 '명량'의 최민식과 다른 결을 보여준다. 왕의 버림과 가족의 죽음, 부하의 배신 등 복잡한 심정의 최민식과 달리 박해일은 흔들리지 않는 단호함과 결의를 잘 보여준다. 통상 고함으로 내지르던 "전군 출전하라!". 그러나 박해일은 나지막하게 내 뱉는다. 그럼에도 훨씬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한산'이 깔끔하게 느껴지는 것은 신파성을 걷어낸 때문이다. '명량'에서 해변에 있던 백성들이 환호를 지르는 장면 등 관객에게 영합하는 상투적인 장면들을 없앴다. 그럼에도 소위 '국뽕'에 취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순신이란 이름 그 자체에서 뿜어 나오는 위대함 때문일 것이다.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