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망연자실한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입력 2022-07-18 20:41:06 수정 2022-07-20 10:25:25

한민경 경사 (대구 남부경찰서 봉천지구대)
한민경 경사 (대구 남부경찰서 봉천지구대)

현장에서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 사례를 자주 접하면서 느끼는 안타까움과 피해 예방을 위한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대구지역만 하더라도 매일 수 십여 건의 보이스피싱 신고를 접하게 된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신고처리 절차에 따라 피해자에게 왜 고액의 현금을 인출 하였는지, 각종 안내 문자 등을 통한 휴대폰 해킹여부, 휴대폰에 설치된 앱과 최근 통화대상자 확인 등을 통해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여러 차례 뭉칫돈을 현금 전달책에게 넘긴 후 경찰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등 안타까운 일들이 오늘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구 남부경찰서는 지난해 906건, 올해 5월 말까지 215건의 보이스피싱 신고를 받았는데 대구 전역으로 확대해 보면 그 신고 건수가 얼마나 많을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사 관계자에 의하면 실제 금전적 피해로 이어진 보이스피싱 사례도 2011년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총 40건에 피해 금액은 무려 8억여 원에 이른다.

우리 지역은 경찰과 금융기관 간 「112신고 협약」이 되어 있어 창구에서 고액을 찾는 경우 은행 직원들의 신고로 경찰이 현장 출동하여 보이스피싱 위험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대부분은 시민들의 협조로 보이스피싱임이 확인되어 피해를 예방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내 돈을 내 마음대로 찾아 쓰는데 경찰이 왜 참견이냐? 인테리어 비용으로 쓸거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출을 갈아타려고 찾는 돈이다"또는"나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니 신경쓰지 마라"고 하면서 경찰의 도움을 완강히 거부하다 결국 피해를 보고서야 뒤늦게 경찰에 신고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경각심을 가져 줄 것을 간절히 바란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들 대부분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서민들이고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빠듯하게 모은 필수자금이나, 가족이 위험에 처했다는 범죄자의 말을 듣고 주변으로부터 급히 빌린 자금들이 범죄자들에게 전달된 경우들이 많아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관들 또한 마음이 아프기는 마찬가지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범죄의 양상이 많이 변화하였고, 보이스피싱 수법도 날로 지능화되고 있다. 이들 사기꾼 상당수는 대출이자를 좀 더 저렴한 이자로 바꿔준다거나, 자신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되었다든지, 계좌번호가 공개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통장에 있는 예금을 새로운 계좌로 옮겨야 한다는 말들로 피해자들의 불안감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피해를 신고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경찰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지만 이미 범죄자들에게 넘어간 엄청난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무너져내리는 표정을 보는 것도 경찰이라는 직업의 또 다른 애환이다. 차라리 만취한 취객으로부터 한 바가지 욕설을 듣는 것이 더 마음 편하게 생각될 정도로 망연자실한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바라보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때로는 "내가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될 줄은 몰랐다", "자식들이나 가족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 가정 불화를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피해자를 위로하며 경찰서 수사팀으로 안내해야 하는 마음 힘든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기도 한다.

언론보도를 보면 요즘엔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홍보가 워낙 잘되어 있어 경찰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업무 관련 전화를 하더라도 시민들이 보이스피싱으로 알고 바로 전화를 끊어 버리는 일들이 있어 때로는 낭패를 겪기도 한다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시민들의 소중한 재산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면 우리 경찰은 기꺼이 불편을 받아 들일 수 있겠다.

며칠 전 언론 기사에 가수 백지영 씨가 평양 공연 섭외로 청와대의 전화를 받고는 보이스피싱인 것으로 생각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매니저를 통해 다시 공연 참여를 요청한 사실을 알고 난 후 나중에 관계자에게 사과했다는 일화를 본 기억이 있다. 이처럼 우리 주변 누구에게라도 쉽게 보이스피싱 전화가 일상화될 정도로 가깝게 느껴진다.

그뿐만 아니라 얼마 전 사무실 동료와 얘기하던 중 자신에게도 보이스피싱을 시도하려는 전화가 걸려와 가짜 이름을 불러주며 대화하던 중에 전화 상대방이"홍길동 씨 장난하지 마세요."라며 실명을 부르기에 깜짝 놀라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시민들이라면 발신자가 특정 은행명으로 나타나고 자신의 이름까지 얘기하는 정도면 대개는 발신자의 요구대로 계좌를 알려주거나 앱을 설치하는 등 시키는 대로 하기 십상이다.

이렇듯 우리 개개인의 개인정보는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노출되어 있음을 깨닫고 전화나 문자를 통해 오는 낯선 내용에는 반응하지 말고 무조건 끊어주길 바란다.

경찰에서는 지난 6월8부 터 8월7일까지 두 달간 보이스피싱 범죄단체 조직원 및 가담자(현금 수거책, 인축책, 송금책 등), 불법 환전·대포폰·통장 개설·유통, 중계기 설치·운영, 범죄 가담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 등을 한 대상자들에게 전화금융사기 특별 자수 신고기간을 운영하며 피해 예방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무리 홍보활동을 하더라도 속칭'귀신에 홀린 것'같은 상태가 되면 그 누구의 말도 믿지 않고 범죄자의 지시에 따라 돈을 건네주게 되는 모습을 현장에서 수도 없이 지켜봤기 때문에 이번 특별 자수 신고기간을 통해서라도 소중한 재산이 지켜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리고 고액 아르바이트라는 유혹에 넘어가 내 가족과 이웃의 피 같은 돈을 넘겨받아 보이스피싱 범죄자에게 송금해 주는 전달책 역할을 자청하는 전달책들에게도 더는 죄를 짓지 말고 자수하여 내 가족과 이웃을 보이스피싱 범죄피해로부터 지켜줄 것을 그대들의 양심에 호소한다.

이제는 더는 그 누구라도 낯선 전화나 의심되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당황해서 시키는 대로 휴대폰에 앱을 설치하거나 링크에 연결하는 것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관공서나 공공기관에서는 개인의 통장 정보나 신분증을 요구하지도 않을뿐더러, 사건 관련 출석 요구를 하더라도 공식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안내하고 있다.

문자로 보내지는 전화번호로 전화해 보면 경찰서나 해당 기관의 담당부서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스피싱 조직의 전화로 자동연결될 수도 있어 전화는 반드시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의 전화를 빌려 확인하는 습관도 필요하고, 아니면 가까운 지구대나 파출소를 방문하여 경찰관을 통해 확인해 볼 것을 권장해 드린다.

그리고 은행 창구뿐만 아니라 현금인출기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고액의 현금을 찾는 사람을 보면 112로 신고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서로 챙겨준다면 보이스피싱 피해를 좀 더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당부한다면 고액 현금 인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을 거부하지 말고 범죄 예방 차원에서 조금만 협조를 해 주신다면 감사하겠다. 다시는 가슴 아픈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오늘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