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마탄의 사수에겐 시간이 없다

입력 2022-07-18 06:30:00

이상헌 뉴스국 부국장

이상헌 뉴스국 부국장
이상헌 뉴스국 부국장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독일 오페라 '마탄의 사수'는 사냥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격 시합이 배경이다. 우승자에게는 삼림보호관이란 꽤 괜찮은 감투에다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와의 결혼까지 보장돼 있다. 속된 말로 일타쌍피(一打雙皮)다.

마탄(魔彈)은 사수가 원하는 대로 날아가서 표적을 명중시킨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탱크를 괴롭히는 재블린(Javelin) 휴대용 미사일의 18세기 버전인 셈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라, 악마에게 영혼을 넘겨준다는 조건이 있다.

'사냥꾼의 합창'이란 노래로 유명한 이 오페라가 떠오른 건 윤석열 대통령의 속절없는 지지율 추락 때문이다. '정권 교체'라는 마법의 탄환 덕분에 단숨에 권력의 정점에 올랐지만 국민들은 벌써 실망한 기색이다. 야당은 급기야 레임덕, 탄핵까지 거론한다.

취임 70일이라면 원제가 '사냥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어'인 이런 승전가를 부를 때가 아닌가? 하지만 여당에선 제대로 일 해보자는 의욕은커녕 30대 당 대표를 둘러싼 토사구팽(兔死狗烹) 논란만 뜨겁다. 대선 10대 공약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조차 희미하다.

대선·지방선거에서 거푸 '정권 사냥'에 성공한 직후라 민심 이반 속도는 더욱 예상 밖이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까 노심초사한 유권자가 많았을 게다. 퍼펙트 스톰을 뚫고 나아가야 할 새 정부의 좌초는 국익 차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서다.

지지층은 사실 집권 초기부터 경계 목소리를 내왔다. '닮은꼴' 이명박(MB) 정부의 실패라는 트라우마에서 기인한다. 당시 500만 표 차 대선 승리는 취임 70일 만에 20%대, 100일 만에 10%대 지지율로 떨어졌고 정권 교체의 의미는 찾을 수가 없었다.

MB 때는 광우병 파동이란 이슈가 있긴 했으나 지지율 급락에는 비슷한 측면도 있다. '고·소·영'이 '서·오·남'으로 이름만 바꿨을 뿐인 인사 참사가 공통분모다.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란 자신감은 워스트 오브 더 워스트(worst of the worst)로 판명됐다.

부실 인사를 둘러싼 비판이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제기되는 것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박민영 대변인은 "여야가 오십보백보 잘못을 저지르고 서로 내로남불이라 지적하는 작금의 상황은 부끄러움을 넘어 참담하다"며 "달라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새 대통령 지지율이 입길에 오르내리는 건 그만큼 우려가 크다는 뜻이다. 20%대 지지율로는 탈북 어민 강제 북송 등 대북 정책은 물론 탈원전, '검수완박' 등 전임 정부의 실정(失政)을 바로잡기에 힘이 달린다. 물론 다음 총선 승리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해답은 신뢰를 되찾는 것뿐이다. 무수한 의혹과 논란에도 자신을 국가 최고지도자로 선택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헤아려야 한다. 뒤집어 말하면 더불어민주당이 쟁권 재창출에 실패한 이유를 잊지 않으면 된다.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면, 마탄의 사수는 해피 엔딩이다. 불공정한 수단을 쓴 게 탄로 나 추방 위기에 놓인 주인공을 은자(隱者)가 구해 준다. 한 번의 실수에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대신 1년 동안 근신하게 하고 훗날 다시 판단하자는 제안이었다.

예상치 못한 가시밭길에 맞닥뜨린 윤 대통령의 은자는 바로 국민이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화답해야 한다. 자성(自省)과 함께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혁신만 이뤄낸다면 박수받을 일은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