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지역 예술인을 기록하는 일

입력 2022-07-14 15:30:00 수정 2022-07-14 17:33:24

예술인 현창, 출생지와 활동지 달라 지역 간 '소유권' 경쟁하기도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김춘수 시인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김춘수 시인

최근 문화예술진흥법이 개정되고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예술기록물 보존에 대한 의무가 명시되면서 지역별 예술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의 사례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부산과 인천의 전문가들이 사례를 견학·조사하기 위해 대구를 다녀갔다. 경남과 전주 등에서도 문의 전화가 오고 전주에서 관련 포럼이 열렸다.

6월 29일 전주에서 열린 예술인기록사업 관련 포럼에 다녀왔다. 전주 지역의 작고·원로예술인을 기록해온 '전주 백인의 자화상' 사업 10주년을 기념한 자리였다. 전주는 '백인의 자화상'이라는 이름으로 2012년부터 올해까지 전주를 연고로 활약한 원로·작고 예술인 70명의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필자는 아르코예술기록원 이한신 원장의 발제에 대한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 원장은 원로예술인들의 예술적 체험과 활동, 그리고 작품 세계를 기록하는 사업을 예술사의 '백 년을 내다보는 아카이브'라 평가했다. 또 아르코예술기록원이 그간 추진해온 예술인 기록사업의 현황과 추진체계, 그리고 결과 활용에 대한 여러 노하우들을 공유했다.

이날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이 오갔지만, 특히 관심이 갔던 내용은 사업 대상 예술인의 '중복성'에 대한 것이었다. 한 지역이 집중 조명하고 있는 예술인을 다른 도시에서도 현창하는 일에 대한 지적이었다. 예술가들을 기릴 때 출생지가 중심이 되어야 할지, 활동 공간이 주가 되어야 할지에 대한 토론은 이미 이전부터 있어왔던 내용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다.

시인 김춘수 탄생 100주년을 준비하기 위해 대구문학관에 모인 문인들
시인 김춘수 탄생 100주년을 준비하기 위해 대구문학관에 모인 문인들

근대기 이후 뚜렷한 업적을 남긴 유명 예술인의 경우, 여러 지역이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는 경우가 꽤 많다. 박목월(1916~1978) 시인의 경우 경남 고성 출생으로 경북 경주에서 자라고 대구 계성학교를 졸업했다. 일본으로 떠났다가 다시 대구로 돌아와 계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서울로 자리를 옮겼다.

해방 이후 청록파를 결성한 이후에도 대구와의 인연을 이어갔고 6‧25전쟁기 문총구국대의 일원으로 대구에서 피란예술가들과 교류했다. 그 뒤 주된 활동 거점은 서울이었지만 그의 문학관은 고향 경주에 세워져 있다. 경주시는 소설가 김동리와 시인 박목월을 기리기 위해 2008년 '동리목월문학관'을 건립했다. 문학관이 건립된 직후, 대구에서의 일찌감치 그의 이름을 먼저 '소유'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김춘수(1922~2004) 시인의 경우는 어떨까. 경남 통영 출생의 그는 1946년 등단했고 1961년부터 1981년까지 경북대와 영남대에 재직하는 20여 년 동안 수많은 후학들을 길러냈다. 또 이 시기 '무의미시'라는 시론을 통해 수많은 시인들에게 영감을 줬다. 경북예총과 경북문인협회 지부장까지 역임하며 활약했으니, 대구·경북에 그와 영향을 주고받은 예술인들이 많다. 현재는 그의 고향 통영시가 2008년 김춘수 유품전시관을 마련해 그를 기리고 있지만, 대구는 그가 시인으로서의 전성기를 보낸 곳이다.

올해 대구문학관은 김춘수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대구에서의 '20년'에 주목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6월 '김춘수, 대구의 기억: 김춘수와 그 제자들'이라는 이름으로 100주년 행사를 준비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그의 제자들을 비롯해 30여 명의 문인이 한자리에 모여 '김춘수'의 맥이 대구에 살아 흐르고 있음을 증명했다. 대구문학관은 오는 10월 그의 육필과 시, 사진자료 등을 모은 전시회를 연다.

부산의 음악인으로 아카이빙되고 현창되고 있는 이상근(1922~2000) 작곡가의 경우, 경남 진주 출신으로 그의 대표작 「보병의 노래」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진주시의 역사관에 보관돼있다. 또 그는 대구의 음악인들과도 인연이 깊다.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에 오래 출강했고, 또 부산교대 재직시절 대구에서 작곡가 우종억, 임우상 선생이 그를 찾아가 사사 받으며 오랜 세월 교류했다. 부산 예술인 아카이브 명단에 이름을 올린 허만하(1932~) 시인의 경우, 대구 계산동 출신이다.

서로 '소유권'을 주장할 정도로 자랑스러운 예술인이 있다는 사실은 행복한 고민이다. 그 인물이 중복되면 어떤가.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영혼은 그들이 머문 지역에 각기 다른 씨앗을 뿌렸을 것이다. 각 지역은 그 예술가의 삶과 예술을 자유롭게 그러나 지역 나름의 방식으로 촘촘하게 기록하되, 그 내용을 공유하면 된다.

일단 우리 지역에 있는 구슬들을 잘 갈무리해서 잘 꿰어놓고, 다음엔 전국적으로 연대하여 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면 된다. 지금의 대구문화예술아카이브는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구슬들을 하나하나 꿰고 있는 작업이다.

임언미
임언미

임언미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팀장, 대구문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