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 장안대 총장
대구 더불어민주당 주변이 시끌벅적하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패배를 복기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일은 시끄러울 수밖에 없고 모름지기 그래야 마땅하다. 유념할 게 있다면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 가운데 우선 원인 규명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 추궁이 앞서면 다툼만 커지고 객관적 사실 확인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진단과 처방을 보니 다 그럴듯하다. 민주당 지역 내부 역량, 중앙당이 안고 있는 문제 등 선거 실패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변수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 다만 꼭 되짚어 보라 말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 그것은 민주당이 대구경북에 도대체 '전략'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는가이다. 민주당이 언제부터인가 이 지역에서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잃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서 하는 얘기다.
김대중 정부 때 민주당은 '동진정책'이라는 전략 패키지가 있었다. 동진정책의 깃발을 들고 이 지역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과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그 전략의 화룡점정은 '밀라노 프로젝트'였다. 이 지역의 주력 섬유산업을 지원하는 대규모 투자정책이었다. 섬유 생산 기술을 고도화하고 패션 디자인 분야를 부가하자는 전략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뜻한 바를 이루지는 못했다. 산업구조 대전환 시기에 섬유산업을 지지하는 정책이 적절했느냐는 비판에서부터 섬유산업 진흥 정책인지 토목건축산업 진흥 정책인지 모르겠다는 놀림까지, 말도 많았다. 지역사회 상층 연대를 통해 지지기반을 만드는 일도 별 성과가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김대중 정부 시기 민주당은 이 지역에대해 뭔가 목표를 가진 '계획이 있었다'는 점은 지금의 민주당이 주목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기 민주당(열린우리당)은 '전국정당화'라는 전략을 간판으로 지지기반 확대에 나섰다. 이 정책은 앞의 정책과 조금 다른 전략적 뉘앙스를 가지고 있었다. 김대중 정부의 '동진정책'이 상층 연대 전략이었다면 노무현 정부의 '전국정당화정책'은 이 지역 개혁 세력들과 긴밀한 연대를 통해 정치적 지지기반을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이 지역의 다수 개혁 세력 인사를 노무현 정부의 권력 핵심으로 발탁한 것도 그런 전략적 고려가 반영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전략도 한계가 있었다. 정당이 아니라 청와대가 중심이 되어 개혁적 지도력을 기르려고 했기에 정권이 바뀌고 나자 모든 것이 거품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청와대가 이 지역 개혁 세력의 역량을 결집했으나 청와대를 내주고 난 다음 총선거에서는 출마자를 찾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정당이 중심이 되어 지도자를 길렀더라면 달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어쨌든 지역주의를 넘어 전국정당화를 하고자 하는 분명한 '계획이 있었다'는 점은 지금의 민주당이 유념할 일이다.
문제는 지난 5년간이다. 이 시기에 민주당은 집권 세력이었는데도 이 지역에 지지기반을 확대, 강화하기 위한 '전략' 패키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김대중의 동진정책에 괄목할 만한 비전도 없었고, 노무현의 전국정당화정책에 필적할 인적 투자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 민주당의 대구경북 정책은 '무전략' 정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전략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부산, 울산, 경남을 취하고 이 지역을 버리는 사석(捨石) 전략이었다고나 할까.
'무전략' 기조는 지난 두 차례의 선거에도 이어졌다. 홍의락 위원장이 주도했던 '남부권 경제 공동체'라는 메가 비전도 제대로 된 뒷받침이 없어 탄력을 잃어버렸고, 민주당이 깜짝 카드로 내놓았던 임미애 경북도지사 후보도 뒷심이 달려 20%대 득표율을 힘들게 넘겼다. 민주당은 국회에서는 절대다수의 의석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 지역의 대의 체계는 결손(缺損) 상태로 버려 놓았다. 민주당이 이 지역에 대해 '계획이 있었다'고 볼 그 무엇이 없었다.
대구경북 민주당이 가장 먼저 성찰해야 할 것은 이 지역에 대한 민주당의 '무전략' 문제다. 정치학 교과서에는 "가장 나쁜 전략보다 더 나쁜 전략은 아무 전략이 없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김대중의 동진정책과 노무현의 전국정당화정책 이후 민주당은 대구경북에서 이렇다 할 전략 없이 지금까지 왔다. 왜 이렇게 되었나를 우선 살피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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