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사람들은 공연이 무대 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조명이 켜지고, 연주자가 걸어 나와 첫 음을 연주하는 순간 말이다. 하지만 연주자에게 공연은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다. 어떤 공연은 몇 달 전부터, 몇 년 전부터 마음속에서 자라난다.
새로운 리사이틀을 준비하며 그 과정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연주하고 싶은 곡들이 있었다. 악보를 펼치고 연습을 시작하면 될 일 같았다. 그러나 곡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바라보다 보니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왜 이 곡들인가.'
생각보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곡은 좋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공연이 되지 않았다. 연주회는 여러 작품을 나열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질문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처음에는 음악에 대한 질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을 거듭할수록 음악보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연습실에서 악보를 보다가도, 산책을 하다가도, 같은 질문이 따라왔다. '왜 이 음악을 지금 연주하려 하는가.'
흥미로운 것은 생각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처음에는 중요해 보이던 것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는 점이다. 그렇게 여러 겹의 생각을 걷어내고 나면 마침내 본질에 가까워진다.
이번 공연에서는 '자유'라는 단어가 남았다. 그리고 그 자유는 누군가로부터 벗어나는 자유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자유에 가까웠다. 정답을 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것. 그 생각에 닿고 나서야 흩어져 있던 곡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예술은 언제나 그런 과정을 거쳐 태어나는 것 같다. 그림도, 글도, 음악도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랜 시간 마음속에서 질문과 사유를 반복하며 자라난 결과다.
관객은 공연 당일의 두 시간을 본다. 그러나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 존재한다. 의심하고, 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생각을 거듭하는 시간이다.
어쩌면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떤 질문은 며칠 만에 사라지지만, 어떤 질문은 몇 달, 때로는 몇 년 동안 마음속에 머물며 새로운 작품의 씨앗이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이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음악은 하나의 형태를 얻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어쩌면 공연은 무대 위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조용한 시간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곡을 연주하느냐가 아니었다.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예술은 본질에 닿으려는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