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윤섭 김천경찰서장
지난 한 해 동안 특정 분야에서 발생한 돈의 규모가 국내 1조원, 세계적으로 4천400억달러(약 660조원)에 달한다. 액수가 커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지난해 김천시 1년 예산이 약 1조5천억원, 대한민국 정부 전체 예산이 728조원이었음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가늠이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거대한 숫자는 산업 발전의 결실이 아닌,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전기통신금융사기'의 피해 규모다. 전 세계 화장품 산업과 맞먹는 수준이니 범죄자들에게 전기통신금융사기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인 셈이다. 이처럼 돈이 되다 보니 수법도 끊임없이 진화한다. 가족을 가장해 급한 병원비를 요구하는 보이스피싱이나 호감을 사며 금전을 요구하는 '연애빙자사기' 같은 고전적 수법은 시작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가짜 주식거래 창을 이용한 '투자리딩사기', 대량 물품을 주문하며 대리 구매 대금을 요구하는 '노쇼사기' 등 다변화되고 있다. 여기에 전화번호 변조와 해킹 앱 유포 등 첨단 기술까지 악용해 교묘하게 시민들의 일상을 침투하고 있다.
전기통신금융사기는 이제 전 세계적 위협이다. 각국이 대응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인터폴을 통한 국제공조도 활발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난해 10월, 흩어져 있던 대응 업무를 모아 경찰청 산하에 '범정부 합동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을 발족했다.
신고 접수부터 수사, 제도 개선까지 일원화된 체계를 구축한 결과, 발족 6개월 만에 관련 범죄 발생 건수와 피해액을 각각 31.6%, 26.4%나 감소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범죄는 쉽게 근절되지 않는다. 인간의 심리적 약점을 철저히 악용하기 때문이다. 범인들은 순간적으로 피해자를 심리적·물리적으로 고립시킨 후 판단력을 마비시켜 지시에 복종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경제 지식이 풍부하면 안전할까. 역설적이게도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이들이 '나는 당하지 않는다'라는 방심 속에서 피해자가 되곤 한다. 범죄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일반 경제 지식이 아니라 최신 수법을 아는 '사기 예방 지식'이다.
김천경찰서 역시 관내 피해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한문, 현장 방문 교육, 전단지 배포 등 전통적 방식은 물론 홈페이지와 SNS 등 뉴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소상공인, 농협 조합원, 중소기업인 등 대상별 맞춤형 예방 활동으로 범죄자보다 한발 앞서 나가고자 노력 중이다.
그러나 경찰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범죄 예방의 완성은 결국 시민 여러분의 관심과 협조에서 이루어진다. 시민 개개인이 범죄 수법을 인지하고 대비하는 지식을 갖추어야만 이 지독한 사기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
다행히 경찰청에서는 '피싱안심 SOS' 사이트를 통해 '예방·홍보센터'를 운영 중이다. 이곳에는 유형별 범행 수법과 대처 요령, 최신 예·경보 정보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나와 가족의 안전을 위해 한 번씩 접속하여 대처법을 미리 숙지해 두기를 권한다.
전기통신금융사기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오늘이라도 당장 나와 내 가족에게 사기 전화가 걸려 올 수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우리가 매일 쓰는 화장품 지출보다 사기로 잃는 돈이 더 크다. 기업화된 조직범죄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