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AI 시대의 연명의료

입력 2026-09-30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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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올 추석에도 많은 이들이 가족들과 소중한 '만남'을 가졌을 것이다. 병원이라는 공간도 다르지 않다. 명절은 평소보다 가족들의 병문안이 늘어나는 시기다. 하지만 중환자실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만남'보다 '이별'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연명의료결정제도를 통해서다.

2018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회복되지 않으며 사망이 임박한 '임종과정'의 환자에게,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기간만 연장하는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체외생명유지술 등을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무의미한 치료로 고통을 연장하지 않고 환자의 존엄과 자기결정권을 지키자는 취지다.

제도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2026년 9월 26일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355만8천19명,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는 20만9천119명, 실제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이행은 54만5천140명에 이른다. 등록기관도 844곳으로 늘었다. 고령화와 존엄한 죽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가, 상담 접근성 확대 등이 배경이다. 그렇다면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단순히 등록자와 이행 건수가 늘어나는 것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연명의료 중단을 위해서는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과 환자 본인의 의사 확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 자료를 보면 환자가 직접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한 비율은 33.5%에 불과했다. 나머지 66.5%는 가족 진술이나 가족 합의 등 비자기결정 방식이었다. 실제 임상에서는 환자가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게 된 뒤 가족과 의료진이 결정을 맡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임종과정'을 판단하는 일이 생각만큼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말기 암환자가 아닌 심인성 쇼크와 같은 급성기 환자는 적극적인 치료 후 회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망 위험이 높다'는 것을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도 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바로 이 지점에 인공지능(AI)이 등장한다. AI는 전자의무기록과 활력징후, 검사 결과, 영상, 약물 투여량, 장기 기능 변화 등을 분석해 중환자의 사망 위험을 예측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AI가 '48시간 내 사망 확률 90%'라고 알려준다면 의사에게는 분명 유용한 정보일 것이다. 하지만 환자의 생명 가치를 '10%'의 생존 가능성이라는 확률만으로 판단해도 되는 것일까?

AI는 인간이 놓치는 악화 신호를 찾고 예후 판단의 편차를 줄이며, 어떤 환자에게 더 신중한 재평가가 필요한지 알려주는 뛰어난 보조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AI의 예측 결과가 곧바로 치료 중단의 근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아직 인간이 AI의 확률 계산 과정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윤리적·법적 문제로도 이어진다.

의료진이 AI가 예측한 높은 사망 확률에 의존해 치료 강도를 낮추고 가족도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했는데, 그 예측이 잘못됐다면 '살릴 수도 있는 생명을 포기하게 만든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우리 사회는 아직 이런 질문에 답할 만큼 충분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보호자들은 환자를 '고통 없이' 보내주기를 원하지만 '고통 없는' 이별은 없다. 생명을 마무리하는 결정은 늘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그 판단까지 AI에 맡길 수는 없다. 우리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인간'이다. 그렇다면 '생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과정 역시 '인간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장훈 경북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