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규의 행복학교] 마음이 아플수록 아버지의 등이 되어 주어야 한다

입력 2022-07-01 12:27:00 수정 2022-07-01 17:45:00

최경규

"112 상황실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밤 12시,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다. "시내 4차로 도로 중간으로 어떤 남자분이 걷고 있어요, 뒤에 오는 차량이 놀라 급정거를 하기도 하고 너무 위험하게 보여 신고해요."

50대 초반의 남자. 그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흐느끼거나 울음을 머금은 얼굴은 더욱 아니었다. 어두운 옷을 입은 터라 미처 그를 보지 못 한 차량에 사고라도 날까 라이트를 끈 채 조용히 뒤에서 따르고 있었다. 그런 나를 의식한 듯, 그는 그냥 가라는 손짓을 계속 하였지만 나는 경찰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서야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지나치며 보이는 그의 결연한 얼굴은 가로등 불빛에 비치어 한동안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도대체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세상 살면서 참으로 여러 일을 겪게 된다. 행복한 경험,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소 짓기도 하지만 기대하지 않은 힘든 시간도 삶이라는 여행에 어김없이 찾아온다. 자존감조차 바닥에 떨어질 무렵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시간은 언제일까? 어쩌면 바로 억울한 일을 당할 때이다. 도로 위를 방황했던 그 남자 역시 억울함에 비틀거리는 순간을 내가 본 것은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누구나 한두 가지씩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만드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감정, 억울함이 생길 때, 우리는 참을 수 없는 모멸감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억울함에서부터 생긴 분노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메마르게 만든다.

◆억울함은 몸과 마음에 생채기 내

내 잘못이 아닌데도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억울한 일은 당하는 것은 자신이 똑똑하지 못해서거나, 현명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다. 이해가 되는 고통이나 상처를 우리는 억울함이라고 표현하진 않는다. 즉 자신의 실수가 조금이라도 인정되는 일은 절대 억울한 일이 될 수 없다. 그런 일들에 대하여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알 수 없고, 객관에 객관이라는 함수를 씌워 계산해 보아도 억울이라는 답이 나온다면 그것은 억울한 것이 맞다. 이 억울함을 당할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더운 한여름, 시원하다 못해 추운 에어컨 아래에 있더라도 몸속에서 일어나는 화(火)는 온몸을 뜨겁게 달군다. 물을 마셔도 입안은 마르고, 스트레스는 기미가 되어 피부로 올라온다. 설상가상으로 찾아온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독감은 집 밖을 나설 용기조차 없애기도 한다.

그럼 이런 억울함이 생길 때 우리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억울함이란 천재지변과 같은 것이다. 너무 속상해 하지 않아야 한다. 예상하지 못한 그리고 쉽게 해결하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마음에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들리는 모든 말은 정상적으로 들리지도 해석되지도 않는다. 타인의 말에 쉽게 상처받기도 하고,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며 마음에 심한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심지어 나를 위해 해주는 주위의 이야기조차 가시가 있는 말로 들릴 이 시기에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민감하고 여린 자아가 상처받았음을 이해하고 안아주어야 한다.

억울함에 상처받았을 때, 말문이 막혀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른다. 반문하고 화를 내어야 할 상황에서의 침묵은 상대에게 동의나 인정으로 읽혀서 일은 더 힘들어져 갈 수 있다. 말을 할까 말까 하다 결국 눈치만 보다 끝나는 관계가 되어서 안 된다. 나를 지켜야 하는 순간에는 반드시 나를 지켜야 한다.

비록 관계가 끝이 나더라도 마지막 순간, 말을 하고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비록 상대방이 그 말을 받아주지 않더라도 어린 자아는 당신을 보고, 당신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 나를 보호하고 안아주는 말을 하는지 아니면 바보처럼 울고만 있는지, 자아는 말없이 보고 있다.

◆말없이 안아주며 다독여 주어야

지금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생각해 보라. 그 사람이 억울한 일에 혼자 울고 있다면 당신은 그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이유를 분석하고자 물어보고, 잘못됨을 바로잡으려 할 것인가? 아니다. 말없이 안아주며 다독여 줄 것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 사람이 바로 당신 안에 있는 자아라고 생각해보자. 이 세상에 자기보다 소중한 사람은 없다. 마음이 아플수록 우리는 든든한 아버지의 등이 스스로 되어 주어야 한다. 즉 자아를 보호할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대처하는 방식을 다르게 해야 한다. 자아존중감이 높은 사람이 되어 자아를 지켜내야 한다. 굴욕을 견디는 힘, 넘어져도 일어서는 힘의 원천 역시, 바로 자기를 존중하는 바탕에서 시작될 수 있다.

명심보감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세상에는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매우 적다. 그렇기에 힘든 시기, 나를 지지해 주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게 도와줄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막막해할 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줄 친구를 만나는 것도 상실의 늪에서 빠져나올 방법이기도 하다. 힘들 때일수록 자기 주변을 정리할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소주 한잔, 수다 한마디도 좋지만, 우리의 영혼이 정리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조용히 오롯이 쉬어야 한다. 다시 회복할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상처가 아물기 위한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아무는 시간은 성숙이라는 부제의 또 다른 내가 태어나는 순간이라 믿어야 한다.

쉼이 머무르는 시간, 우리는 복기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겸손을 배우기도 하지만, 이 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오롯이 자신에게 쉼을 선물해야 한다. 어제 힘들었던, 길 한가운데서 억울함을 소리 없이 목놓아 울었던 그의 가슴이 아물어 가고, 건강한 자존심으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길 기도해 본다. 가슴 시려 본 사람만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법이다.

최경규

행복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