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새책] 그렇게 물리학자가 되었다

입력 2022-06-30 11:23:59 수정 2022-07-02 06:47:09

김영기, 김현철, 오정근, 정명화, 최무영 지음/도서출판 세로 펴냄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연합뉴스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연합뉴스

"나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물리 과목을 배워본 적이 없다. 대입 면접 중 면접관이 물리학과에 지원한 동기를 묻자 앞이 깜깜했다. 생각나는 거라곤 아인슈타인 이름밖에 없어서 '아인슈타인을 좋아해서요'라고 대답했다.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면접관 교수님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정명화 서강대 교수)

'그렇게 물리학자가 되었다'는 김영기 시카고대 석좌교수, 최무영 서울대 교수, 김현철 인하대 교수, 오정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정명화 서강대 교수 등 5명의 물리학자가 펴낸 책이다.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초등학교부터 학부, 석사과정까지 국내에서 마친 K-과학자다. '어떻게 물리학자가 되었나'라는 질문에 구체적인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내며 자신들의 삶을 들려준다.

수학을 전공하려 했으나 함께 어울려 놀던 선배, 친구들을 따라 물리학과에 갔다가 물리학의 재미를 알아버린 김영기 교수. 기본입자를 연구하는 실험물리학자가 된 그는 2024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물리학회 회장직 수행을 앞두고 있다.

김현철 교수는 고등학교 2학년 학기말시험에서 수학 영점을 맞고, 아버지에게 '봄날 이불 털 듯이' 먼지 나게 맞은 기억을 얘기한다. 고3 때까지 시만 쓰다가 뒤늦게 물리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양성자의 구조와 강입자를 연구하는 이론 물리학자가 됐다.

어린 시절부터 과학책을 탐독하고, 우주와 천문학을 동경한 오정근 연구원. 초등학교 입학식 때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을 자랑스럽게 읊었다가 친구가 '수우미양가'라는 새로운 주문으로 응전하는 바람에 머쓱하기도 했지만, 굴하지 않고 정진해 어린 시절의 꿈을 이뤘다.

정명화 교수는 대학교 1학년 때 시위에 필요한 돌을 준비하려고 학교 보도블록을 깨다가 일반물리학 담당 교수님과 딱 마주치는 바람에 졸지에 '학교 자산을 파괴하는 한심한 학생'이 됐다. 오기로, 수치심으로 공부하다 물리학과 사랑에 빠져 자성체를 연구하는 실험물리학자가 됐다.

중학교 때 누나의 물리 교과서를 혼자 풀어가며 재밌게 읽고, 고등학교 때 학교 신문에 '현대물리학의 이해'라는 글을 연재했던 최무영 교수. 자연스럽게 물리학자가 된 그는 다양한 물질 현상과 더불어 신경그물얼개, 혈당조절, 잠자기 등 생명 현상, 교통 흐름, 도시 지형, 금융 등 사회 현상까지 연구하고 있으며 프랑스 시인 베를렌의 시를 분석한 논문도 쓴 독특한 물리학자다.

입자물리, 핵물리, 중력이론, 응집물질물리, 통계물리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지은이들의 얘기는 그 자체로 다채로운 물리학의 향연을 보여준다. 또한 같은 물리학과라도 학교마다 조금씩 다른 교과 과정, 박사과정에서 겪은 나라별 연구실 문화와 학계 분위기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이들의 사연을 읽다보면, 과학자가 되는 일도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그래서' 사이를 오가는 고민의 결과임을 알게 된다. 물리학자 하면 떠오르는 위인, 천재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지만 누구나 한 번쯤 했을 법한 고민과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지은이들의 얘기가 무척이나 현실적이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지은이들이 얘기하는 물리학의 매력은 무엇인지, 물리학자로서 느끼는 일의 기쁨과 슬픔은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204쪽, 1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