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다시 ‘뜨거운 감자’ 된 북아일랜드

입력 2022-06-19 11:09:22 수정 2022-06-20 16:13:27

박태경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박태경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박태경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우리가 일반적으로 영국으로 알고 있는 나라의 공식 명칭이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일부라는 것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다소 의아해한다. 아마도 지리적으로 영국 본섬과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일랜드의 북쪽 지방 정도로 여기지 않을까 싶다.

사실 북아일랜드도 원래는 지금의 아일랜드 공화국(이하 아일랜드) 영토의 일부분이었다. 하지만 아일랜드가 영국의 식민 지배와 그 자치령인 '아일랜드 자유국'을 거쳐 지금의 공화국으로 완전히 독립할 때 신교도(연방주의자)가 다수였던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직접 통치 지역으로 남으며 지금과 같이 영국 연합 왕국의 일원이 되었다. 그 이후 구교도(민족주의자) 세력은 친(親)아일랜드 정당인 신페인(Sinn Féin)을 중심으로 북아일랜드를 영국으로부터 되찾기 위한 지난한 투쟁을 벌여왔다. '피의 복수'가 오가던 극심한 대립은 영국 정부와 아일랜드 정부, 북아일랜드 내 각 정파가 1998년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에서 평화협정을 타결함으로써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되었다.

이런 북아일랜드가 다시 이슈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영국 정부가 2020년 1월 유럽연합(EU)을 공식 탈퇴하면서 맺은 '북아일랜드 협약'의 핵심 조항을 폐기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영국 정부와 EU가 맺은 기존 협약에는 북아일랜드는 EU 단일시장에 남겨 두고 영국 본섬과 북아일랜드 간에는 통관과 검역이 명문화돼 있다. 영국 내에서 본섬과 자국의 일부인 북아일랜드 사이에 '경제적 국경'이 설치된 것이다. 이 협약은 당시 북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연방주의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가뜩이나 바다를 사이에 두고 단절되어 있는 북아일랜드와 영국 본섬이 사실상 더욱 멀어지게 된 것이니 그들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가 북아일랜드의 EU 동반 탈퇴 혹은 잔류 문제로 난항을 거듭하고 있을 때, 새로 총리에 임명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신속한 브렉시트를 위해 당시 '뜨거운 감자'였던 북아일랜드 해법을 풀 수 있는 방법이라며 본인이 직접 이 협약에 서명하게 된다. 한 국가 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 '벨파스트 협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북아일랜드인의 20% 이상이 아일랜드에 직장을 두고 출퇴근하고 있는 등의 현실적인 부분을 감안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영국 본섬에서 북아일랜드로 가는 물품에 대해 기존의 통관 절차를 생략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지난 13일(현지 시간) 영국 정부가 의회에 제출했다. 이에 EU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영국 정부의 이번 발표는 북아일랜드 협약을 일방적으로 깨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자칫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경제 블록인 EU와 영국의 무역 분쟁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존슨 총리를 비롯한 일부 장관은 이번 발표가 국제법 위반이 아니며 오히려 북아일랜드의 안정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존슨 총리가 처해 있는 정치적 상황과 그가 해당 협약에 서명한 당사자라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그 진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오히려 외부적으로는 지난 5월 신페인당이 사상 최초로 다수당이 된 북아일랜드의 총선 결과가 이번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 기간 중 정부의 방역 지침을 어기고 총리 관저 등에서 수차례 술 파티를 벌여 불신임 투표까지 불러온 이른바 '파티 게이트'로 인한 자신의 정치적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카드로 보인다.

영국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EU의 입장은 확고해 보인다. 북아일랜드 협약에 대한 재논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브렉시트를 거치면서 사이가 틀어진 영국과 EU의 관계가 영국 정부의 북아일랜드 협약 수정 건으로 더욱 차가워지게 됐다. 그만큼 북아일랜드는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문화부 jebo@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