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혁 소설가
정확한 날짜를 알 수는 없지만 1921년 어느 봄날, 할아버지는 중학교 대표로 강제 동원돼 대구신사(大邱神社)에 참배하러 가게 된다. 행사가 끝난 후 할아버지는 순종황제와 이토 히로부미가 식수한 어린 가이즈카 향나무 앞에서 각 학교 대표와 단체 사진을 찍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35년 후인 1966년, 아버지는 군 제대 후 일자리를 찾고 있었는데 대구신사를 철거하고 그 자리를 공원을 조성하는 공사에 마침 인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찾아 허드렛일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근처 함바집에서 집안일을 돕던 21살의 순진한 처녀를 꼬드겨 역시 가이즈카 향나무 앞에서 억지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었고, 3년 구애 끝에 결국 그 처녀와 결혼하게 되었다. 다시 정확히 20년 후인 1986년, 나는 그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는데 학교 주변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고 가족과 함께 달성공원 가이즈카 향나무 앞에서 졸업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또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나의 딸들도….
잠시 시간을 내 달성공원 한 바퀴를 거닐다가 문득 달성공원을 배경으로 한 어느 집안의 '픽션' 하나를 떠올렸다. 여전히 공원의 중앙을 지키고 있는 가이즈카 향나무 두 그루 앞에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공원 이전 소문이 돈 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달성공원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가 어릴 적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은 잘 보관되어져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좀체 찾아보기 힘든 두툼한 앨범에 담겨 본가의 낡은 장롱 속에 들어 앉아 있을 것이다. 그 앨범 속에는 아직 젊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이제는 세상을 떠난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멜빵 반바지를 입은 내가 달성공원을 배경으로 찍은 빛바랜 사진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대로 남겨져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펼쳐본 지 족히 이십 년은 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공연히 마음이 쓸쓸해졌다가 이번 주말 실행할 계획 하나를 잡았다.
이름하여 '달성공원 사진전(展)'. 본가와 처가에 남아 있는 오래된 달성공원 사진을 모조리 걷어 색이 더 바래지기 전에 디지털화시키고 가족들의 스마트폰으로 공유할 작정이다. 다른 시간, 같은 배경 그리고 이제 많이 변한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많이 가 보았고, 오래되었고, 가까이 있다고 '만만하게 생각한 이 공간'에게 그만 미안해지고 말았다. 마치 늘 옆에 있어 소중함을 까맣게 잊고 있던 가족처럼 어찌 보면 우리 지역 사람들은 달성공원에 조금은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물질적인 무언가를 해 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감사함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우리가 이 공간을 아끼는 하나의 방법은 아닐는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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