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로 읽는 전쟁 톡톡] 눈물로 쓴 징비록, 지난 잘못을 살펴 뒤의 환란을 조심하라

입력 2022-05-27 13:30:00 수정 2022-05-28 10:26:51

임진왜란 전쟁기념관 제공
임진왜란 전쟁기념관 제공

"천지신명이시여! 내 아들 서애는 집에서 효자이고 나라에는 충신입니다. 위로 황천이 계시니 감히 거짓으로 속이지 못할 것입니다. 부디 자식의 앞날을 순조롭게 거두어 주소서...."

지난날 임진왜란을 피하여 안거했던 도심촌(경북 봉화)으로 다시 돌아온 서애 류성룡의 노모가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간절한 기도다. 조선을 무참하게 짓밟은 임진왜란의 주범 일본과 화친을 주도했다는 명목으로 죄인이 된 서애는 끝내 관직을 삭탈당하고 고향 하회로 귀향한다. 1599년 이른 봄, 낙향한 아들을 애통해하며 노모는 매일 아침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서애는 몇 가지 챙겨온 세간을 옥연정사에 내려놓았다. 이른 봄날의 해가 서쪽 언덕으로 넘어가자 어둠이 서둘러 찾아들었다. 서애는 세심재 마루에 앉아 하늘을 쳐다본다. 이월 말 하늘의 맑은 별들이 이전과 달리 처량하게 다가왔다. 부용대 위에서 이따금 부엉이 소리가 애닯게 들려오고 잔설을 녹인 화천의 물소리도 솔바람을 타고 흘러들었다. 공무를 뒤로하고 어쩌다 고향을 찾아 머물 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이었다.

쉬이 잠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첫날밤을 설치고 땅거미가 풀릴 무렵 서애는 이부자리를 털고 마당으로 나갔다. 도화 가지를 출렁거리면서 새 떼들이 조잘거리고 있었다. 새들도 서애만큼이나 잠을 이루지 못했나 보다.

서애는 서쪽으로 난 간죽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형 겸암이 저만큼 자신을 맞으려 천천히 들어서는 환영을 본다. 젊은 날 간죽문 밖 부용대 자락으로 좁게 낸 토끼길을 쫓아다니던 형과의 추억이 아지랑이처럼 떠올랐다. 형과 함께 별을 헤고 달을 그리던 지난날들이 한없이 그리웠다.

서애는 굽어 도는 화천을 내려다보면서 가파른 토끼길을 천천히 걸었다. 나막신 바닥 밑으로 뽀드득거리는 서릿발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마치 자존을 지키려는 항거의 소리 같았다. 지난 7년간의 전쟁 동안 명줄을 지키려 했던 민초들의 신음 소리 같기도 했다.

순간 눈물이 핑그르 돌았다. 일본의 총칼 앞에서 마른 풀잎처럼 스러져간 주검과 피폐한 채로 널브러진 삶과 절규, 그 현실 앞에서 얼마나 많이 분노하고 서러워했던가. 눈물을 흘리다 못해 피를 토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비켜나갔다.

지각이 있는 선비들은 제 몸을 아끼지 않았고 무지한 백성들도 그들을 따랐다. 향촌과 나라를 위한 싸움에 앞다투어 행동했다. 무자비한 일본군 앞에서 일부 관리들은 두려워 도망을 치고 몸을 숨겼지만 민초들은 오히려 용감했다. 자신 한 몸으로는 부족하다 하여 처자식까지 죽음의 전장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아! 충성스러운 혼들이여,

서애는 전장에서 목격한 전투 상황과 백성들의 애환을 기록하고 싶었다. 자신의 기억이 희미해져 가기 전에 보고 들은 것들을 가감 없이 더듬어 내고 싶었던 것이다. 전란의 책임을 질타하는 임금과 정적의 눈길이 버거운 짐이 되었지만 서애는 그 일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고 결심한다.

"그래, 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여 놓으리라. 우리 시대의 환란을 후세대들에게 거울처럼 비춰 주고 경계토록 하리라." 그런 불굴의 의지는 서애 자신을 4~5년 동안 옥연정사에 묶어 놓게 한다. 죽음으로 항거했던 지난날의 전쟁을 반추하고 주르룩 흘러내리는 눈물을 먹물 삼아 기록으로 남겼다. 그것이 <징비록>이다.

<징비록>은 16세기 말 조선과 일본 간의 전쟁사이자 전쟁론이기도 하다. 서애가 체험한 전장의 생생한 기록일 뿐만 아니라 지휘관의 전쟁철학이 담겨 있다. 그것이 <징비록>을 조선의 무경이라고 이해하는 까닭이다.

실로 임진왜란은 조선 사회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었다. 위아래의 신분을 뛰어넘은, 민족적 존폐의 운명을 헤쳐나가야 하는 극한의 상황을 경험하게 하였다. 건국 초기부터 명의 안전망에 놓여 있었던 조선은 초유의 전쟁 공포를 경험한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누볐던 전쟁지도자가 보고 들은 것들을 눈물로 기록하고 처절한 국난을 겪으며 절실히 깨달았던 자신의 군사관을 담아 <징비록>을 낳게 한 것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원인과 실상을 전하고 조선의 관민과 전쟁기간 내내 전쟁지도를 감당한 서애 자신의 입장을 설득력 있게 기록하고 있다.

전쟁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 무용담이 아니다. 자기반성이다. 아울러 그 바탕 위에 무비를 세워야 한다는 강한 의지다. 그게 곧 징비(懲毖)다. 400여 년 전, 조선 강토 곳곳에서 전쟁의 포화를 몸소 겪어낸 서애는 <징비록> 행간에서 징과 비의 끈을 놓지 않고 웅변한다. 그것은 불변의 지침으로 오늘날까지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기에 필자는 '전쟁톡톡' 지면을 빌려 <징비록> 속의 전쟁 이야기를 몇 회 덧붙이려 한다.

김정식
김정식

김정식 육군삼사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