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종가에서 농암종가로 "500여년만에 돌아가는 서책"

입력 2022-04-29 12:50:21 수정 2022-04-29 21:50:39

명종이 하사한 '문헌통고' 133책, '적선' 목판 2점
'빌려온 책 모두 돌려주라' 퇴계 유지 받들어 반환
지난해 8월, '입원록' 등 소수서원에게 돌려주기도

한국국학진흥원과 도선서원운영위원회는 다음 달 2일 도산서원이 기탁해 관리해오던
한국국학진흥원과 도선서원운영위원회는 다음 달 2일 도산서원이 기탁해 관리해오던 '문헌통고' 133책과 '적선' 목판 2점을 원래 주인인 농암종가로 반환하기로 했다. 사진은 문헌통고 앞장 내사기.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옛 선조들이 서로 빌려주고 돌려가면서 읽었던 서책들이 수백년이 흐른 지금 속속 주인을 찾아 반환되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지난해 8월 130여년 만에 '입원록'과 '원록등본'을 원래 주인인 소수서원으로 돌려준데 이어서 다음 달 2일에는 '문헌통고'(文獻通考)를 500년 만에 주인을 찾아 농암종가로 돌려보낸다.

이날 오후 2시 도산서원 전교당에서는 도산서원운영위원회가 국학진흥원에 기탁했던 '문헌통고' 133책과 '적선'(積善) 목판 2점을 영천이씨 농암종가로 반환하는 국학자료 반환 및 인수인계 기념식을 진행한다.

도산서원운영위원회는 도산서원 광명실과 장판각에 보관해오던 1만여 점이 넘는 책과 책판을 2003년 항온항습 수장고 시설을 완비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해 보존관리해 오고 있다.

이 유물 가운데 '문헌통고' 133책(348권 140책 중 7책 결락)은 명종(明宗)이 1558년에 당시 사헌부집의에 재직 중이던 영천이씨 하연(賀淵) 이중량(李仲樑·1504~1582)에게 직접 하사한 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한국국학진흥원과 도선서원운영위원회는 다음 달 2일 도산서원이 기탁해 관리해오던
한국국학진흥원과 도선서원운영위원회는 다음 달 2일 도산서원이 기탁해 관리해오던 '문헌통고' 133책과 '적선' 목판 2점을 원래 주인인 농암종가로 반환하기로 했다. 사진은 문헌통고에는 '영천 이 공간이 진성 이 경호에게 보라고 주다'라 적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이중량은 농암 이현보(李賢輔·1467~1555)의 넷째 아들이다. 특히 이 책 속에서 "책 주인 영천 이 공간(公幹·이중량의 자)이 진성(眞城) 이 경호(景浩·이황의 자)에게 보라고 주다"(冊主永陽李公幹 供覽眞城李景浩)라 기록돼 있다.

이에 따라 도산서원운영위원회와 퇴계종가는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빌려온 책은 모두 돌려주라"는 유지를 받들어 반환을 결정했다.

퇴계 이황과 하연 이중량은 서로 막역한 친구로 1534년(중종29)에 문과에 동방급제한 이후 관직 생활과 더불어 일생을 함께했다.

이후에도 두 가문은 예안에서 대대로 세거하며 오랜 세월 동안 가문 간의 정의를 돈독하게 다져왔다.

도산서원운영위원회는 이번 행사를 기회로 도산서원 장판각에 보관돼 있다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된 선조 어필 '적선' 목판도 함께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이 목판은 농암 선생의 여섯째 아들 매암(梅巖) 이숙량(李叔樑·1519-1592)이 선조에게 하사받은 것이다.

한편, 한국국학진흥원과 도산서원운영위원회는 지난해 8월 국내 최초의 사액 서원인 경북 영주시 소수서원 유생 등의 명단을 기록한 '입원록 제1권'과 '원록등본'을 원래 주인인 소수서원에 돌려주기도 했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은 "책이 귀하던 시절 133책이라는 큰 규모의 책을 빌려주며 돌려볼 수 있었던 것은 두 선생이 서로의 학문을 깊이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두 분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보기 드문 깊은 우정, 그리고 그 뜻을 이어가는 후손들의 미담은 바쁘고 삭막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 했다.

한국국학진흥원과 도선서원운영위원회는 다음 달 2일 도산서원이 기탁해 관리해오던
한국국학진흥원과 도선서원운영위원회는 다음 달 2일 도산서원이 기탁해 관리해오던 '문헌통고' 133책과 '적선' 목판 2점을 원래 주인인 농암종가로 반환하기로 했다. 사진은 2점의 목판 가운데 '선'. 한국국학진흥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