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가다 수필가(2021 매일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눈길을 끄는 그래픽이 대로변에 설치돼있다. "다 잘될거야, 힘내!" 등을 토닥이는 따뜻한 문구다. 캄캄한 밤과 푸른 불빛의 조화는 마치 망망대해의 등대 같다.
며칠 전 거리에서 보았던 광경이 불빛 속에 어룽거린다. 청년들이 추적거리는 비를 맞으며 광고판을 들고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었다. 자세히 읽어보니 무슨 종교 단체를 알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평화로운 모습이 아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비를 맞고 서 있는지 궁금해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구원이 다가왔다"는 광고판에 젊음을 맡기고 서 있는 청년들이 신앙이 있어서 자신을 던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남의 자식이 아니라 내 자식이며 우리의 미래다. 공들여 키운 자식이 거리에 서 있다면 어느 부모가 마음 편하랴.
취업의 문턱이 높은 것은 말할 여지가 없다. 하다못해 분식점 아르바이트도 이력서를 내고 기다려야 한단다. 개천에 용이 날 수 있었던 시절에는 신문이나 우유배달을 하면서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금밭에서만 금이 나오는 세상이다. 삶의 치열함을 몸으로 부대끼면서 겪고 있는 청춘들에게 그래픽스 문구가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 잘될거야, 힘내!"
내 아들은 요리사다. 호텔경영학을 공부하던 아들이 요리를 직업으로 선택할 때 충격이었다. 남자가 칼을 잡고 요리를 한다니 세상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아들의 대답은, 전부 펜만 잡고 있으면 세상의 바퀴가 제대로 구르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의 바퀴를 왜 내 아들이 걱정해야 할까. 공부하기 싫은 놈의 변명이라고 나무랐다. 꼴찌가 있어야 일등이 빛을 낸다니 납득하지 못할 이론이었다.
체면이 구겨지고 자존심이 낭떠러지로 곤두박질했다. 직업에 귀천 없다는 말을 곱씹어 보았지만, 마음은 늘 가시방석이고 불편했다. 의사나 교수, 대기업에 다닌다는 남의 자식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나의 편협한 생각이 아들로 인해 바뀌었다. 아들이 적성에 맞는 직업을 택해서 행복하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꼴찌가 일등인 세상이 되었다. 아들은 요리가 예술이 된 시대에 선두 주자로 달리고 있다. 조리복에 앞치마를 두르고 캡을 쓴 모습이 자랑스럽다. 정년퇴직은 걱정 없다면서 너스레를 뜨는 아들이 든든하다. 아들의 손은, 칼에 베이고 기름으로 화상 입은 흉터가 훈장처럼 새겨져 있다. 힘들고 고된 직업에서 성취하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아들에게서 배운다.
"다 잘될거야, 힘내!" 오늘따라 불빛이 환하고 더 밝다. 절망의 구렁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는 푸른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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