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 연극배우
평소 책을 읽을 때 위인전과 자서전, 에세이를 즐겨 읽는 편이다.
나보다 먼저 살아오신 분들의 자취를 보며 배울 점이 많기도 하고,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절을 생생하게 묘사해놓은 글들을 보며 마치 그 시대에 내가 살고 있는 듯한 상상을 하는 것이 꽤나 재미있다. 그분들의 과거사를 읽다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추억 속 솜사탕을 떠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 '지나간 것은, 다 그립고 눈물겹다'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됐다. 대구에서 활동했지만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윤상태 선생의 손녀딸인 윤이조 선생이 쓰신 책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지금의 북성로와 약전골목 주변인데, 내가 6~7살 무렵 살았던 곳이 약전골목(그 시절에는 '종로 혹은 종로 가구거리'라고 불렀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이라 책을 읽은 후에 잠시 그 시절의 향수(鄕愁)에 젖어들었다.
내가 살던 집은 'ㄷ자' 형태로 툇마루가 있는 방들이 이어져 있고 마당 가운데에는 돌을 쌓아서 만든 화단이 있었다. 그 화단 한쪽 귀퉁이에는 작은 연못을 만들어놔서 알록달록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바로 보이는 작은 수돗가에는 옛날식 펌프가 있었는데, 내가 작았던 건지 펌프가 컸던 건지 물 한 바가지를 펌프 안에 부어 넣고는 펌프 손잡이에 매달려 온 힘을 다해 깡충깡충 뛰며 물을 끌어올리는 것이 7살의 나에게는 최고의 놀이였다.
건넌방에는 수염이 멋들어지게 자란 털보 아저씨가 살고 계셨는데 날이 어두워지면 포장마차 리어카를 끌고 장사를 나가셨다. 유난히 나를 많이 예뻐하셔서 종종 포장마차에 놀러를 갔는데, 그때마다 내 팔뚝만 한 새우를 구워 까서는 입에 넣어주곤 하셨다. 그 새우의 맛이 어찌나 훌륭했던지, 그 후로 그와 같이 맛있는 새우를 다시는 먹을 수가 없었다.
지금 그 집은 장사를 하는 곳이 됐고 털보 아저씨도 어디서 무얼 하시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를 때면 가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부터 대구의 여러 예술 단체들이 대구를 배경으로 한 역사적 사건들로 공연, 전시 등을 하고 있다. 주로 국채보상운동이나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많다. 모두 훌륭하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의 유년 시절을 배경으로 그 시절 사람들의 소박하고 풋내 나는 삶을 담아낸 따뜻한 연극 한 편 만들어서 올려보고 싶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유한한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제목은 향수(鄕愁)가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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