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칼럼] 앞으로의 국정 운영 기대되는 이유

입력 2022-04-03 15:17:13 수정 2022-04-03 16:20:56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나는 과거 매일신문 칼럼에서 청와대 권력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대통령 비서실부터 바꾸자-악마도 천사도 디테일에 있다(2)'는 칼럼은 2017년 2월 쓴 것이다. 그해 초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거대 담론 대신 국정 운영의 디테일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칼럼의 일환이다. '청와대' 또는 '비에이치'(BH)로 통칭되는 곳에서 나오는 지시나 지침은 공직자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신성불가침의 권위를 지닌다.

일개(?) 비서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 뜻을 반영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통령 권위를 빙자하여 개인 의견을 관철하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어느 쪽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현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이 육군참모총장을 오라 가라 한 사건은 '청와대 권력'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아쉽게도 내 의견은 크게 호응을 얻지는 못한 것 같다. 논리와 명분에서 설득력이 부족한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개헌, 선거구제 개편 등 기존 질서를 뒤엎는 화끈한 조치를 개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성정에 기인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청와대 이전과 개방 약속은 큰 기대를 갖게 한다. 애초의 '광화문 시대'와는 다른 '용산 시대'지만 청와대를 나오겠다는 다짐을 드디어 실천에 옮긴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물론 당선인과 인수위가 국방부 이전 등을 명할 권한이 있는가는 충분히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 해도 법과 절차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 정부가 처음의 협조 태세에서 거의 방해로 전환한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 개방 혹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김영삼(YS) 전 대통령 이래 일종의 숙원 사업이다.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 드리겠다는 문재인 후보의 연설은 지금 보아도 명문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문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어 "제가 대통령이 되면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이전하겠다. 청와대 대통령 시대를 끝내고,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를 나와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 늘 소통하고 함께하겠다" "지금의 청와대는 개방해서 국민께 돌려드리겠다"고 선언했다. "청와대는 조선총독부 관저, 경무대에서 이어진 청와대는 지난 우리 역사에서 독재와 권위주의 권력의 상징이었다. 제왕적 대통령 문화의 상징이었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기관의 상징이었다"고 평가했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의 개막과 함께 이 모든 상징들을 청산하겠다"고 했다.

2017년 대선에서도 문 후보는 같은 공약을 반복했다. 취임 후 '경호와 의전', 국민 불편 등을 이유로 논의는 없었던 일이 되었다. 현 정부도 광화문 대신 용산 국방부를 대안의 하나로 검토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안보 공백'은 반대 이유로 타당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 개방이 불러올 일종의 신드롬을 경계하는 정치적 고려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다행히 신구 권력이 청와대의 단계적 이전과 최소한 소요 비용을 예비비로 상정할 것을 합의했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다. 청와대 이전 업적에 문 대통령의 일조도 분명히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관심은 이제 단순한 장소적 이전이 아닌 대통령 권력 운용의 구체적 모습을 바꾸는 데 모아져야 한다. 비서와 비서실은 말 그대로 대통령 보좌 기능에 그쳐야 한다. 청와대 비서실이 아니라 '대통령 비서실'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청와대 비서실이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권력기관으로 군림해 온 행태는 한참 잘못된 것이다. 내각이 무력화되는 것은 비서실이 득세하는 당연한 결과이다. 관료들은 청와대 지시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자세가 될 수밖에 없다. 문제가 생기면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이 쏠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장·차관 등 내각을 지휘하며 일을 해야 한다. 대통령 비서실은 대통령이 내각과 함께 국정 운영을 잘할 수 있도록 보좌 역할에 그쳐야 한다. 대통령실 인력을 대폭 줄이고 내각과 함께 일하겠다는 윤 당선인의 인식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이다. 청와대가 사라지고 대통령실로 만들기만 해도 앞으로의 국정 운영은 상당 부분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