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유니콘 튜브처럼

입력 2022-03-21 10:21:10

임수현 시인

임수현 시인
임수현 시인

인형병원이 있다는 걸 아시는지. 밤새 껴안고 자는 애착인형이 있는지. 아마 그런 인형이 하나쯤 있다면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이 병원은 인형을 '아이'라고 호칭한다. 인형의 주인은 '보호자'다. 수선을 수술이라고 한다. 수술이 끝나면 회복실에 있다가 택배 상자에 고이 담겨 집으로 온다.

나도 '이언이'라고 부르는 사자 인형을 인형병원엘 보낸 적 있다. 배 부분 솜이 꺼지고 바느질이 터져 솜이 삐져나오기 시작했기 때문. 오래 안고 자다 보니 세탁도 해야 할 것 같아. 인형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비닐로 잘 싼 다음 "우리 이언이 잘 부탁드려요"라고 쓴 메모지를 잘 보이는 곳에 넣었다.

어떤 사람은 애착 인형 먹으라고 초콜릿이나 과자를 상자에 넣어 보내기도 한다고. 또 전화를 걸어 잘 있냐고 우는 보호자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애착인형을 수술실로 보내고 걱정하고 있을 보호자를 위해서 "수술 잘 마치고 다른 인형 친구들이랑 쉬고 있어요"라고 사진을 찍어 보내준다. 이쯤 되면 진짜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다.

적지 않는 병원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길 기다리고 기다린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 돈이면 차라리 새로 하나 사는 게 낫지 않겠니'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애착 인형은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힘들고 지칠 때 말없이 곁을 지켜주고, 꿈속까지 따라와 악몽들을 물리쳐 준 유일무이한 존재다. 삶의 일부를 함께 나눈 반려 인형인 셈. 아이들 이야기 같지만 많은 어른들 얘기다.

애착인형은 아동기에 주로 이용되는 대상이지만, 그 흔적은 어른이 된 뒤에도 남는다. 애착인형은 자신의 심상을 통해서 안정을 얻는데 실제로 내 기분에 따라 애착인형의 표정이 다르게 보인다. 기분이 좋은 날은 애착인형도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힘들고 지칠 때는 같이 슬퍼 보인다. 자신의 감정을 투영해 바라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양육자가 자신에게 해줬던 따뜻한 행위를 내재화함으로써 스스로를 조절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언아, 오늘 왜 기분이 안 좋아? 힘든 일 있었어." 자신의 상황이 투영된 애착인형은 인형과 사람 간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나의 관계로 거듭나 내가 나를 다독이는 거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애착인형이 주는 치유는 바로 이런 데서 발생한다. 이러니 '인형이 분실로 돌아오지 못할까'라는 두려움과 '혹시나 수술로 아프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전이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외롭긴 마찬가지. 애착인형은 그 외로움의 바다에 떠있는 작은 유니콘 튜브 같다. 예전에 할머니가 그랬다. 오래된 물건에는 영혼이 깃든다고.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애착 인형은 나의 영혼 곁에 숨쉬는 나의 또 다른 영혼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