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0월 중국군 가세로 전세가 바뀌자
공비, 빨치산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었습니다.
경찰 지서 마저 뺏긴 첩첩산중 거창 신원면은
공비들의 땅, 빨치산 세상으로 변했습니다.
이듬해 2월, 대대적 소탕작전이 시작됐습니다.
작전명은 손자병법의 견벽청야(堅壁淸野).
'지킬 곳은 굳건히, 버릴 곳은 깨끗이 비운다'
"작전 지역 내 있는 사람은 전원 총살하라"
"공비 근거지가 되는 가옥은 전부 소각하라"
그때 신원면은 '견벽'이 아닌 '청야'였습니다.
첫날인 2월 9일 84명, 10일에는 102명.
11일엔 신원초교에 불러 모은 주민 가운데
군·경찰·방위대 가족을 뺀 남녀노소 533명이
박산골 등에서 국군의 총부리에 쓰러졌습니다.
719명이 학살되고 신원면은 불바다가 됐습니다.
"통비분자 187명 사살…". 이튿날 군의 담화는
거짓으로 드러났고, 학살을 주도한 군 지휘관은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1년 만에 복직됐습니다.
유가족들은 숨죽이며 사건 3년 만에 박산골에서
겨우 유해를 수습해 합동묘소를 만들었습니다.
1960년 4·19 혁명은 한줄기 빛이었습니다.
그해 11월 합동묘소에 위령비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5·16 군사 쿠데타로 다시 물거품.
유족회 간부는 '반국가 단체'로 구속되고 묘소는
파헤쳐졌으며, 비는 훼손돼 땅속에 쳐박혔습니다.
길고 긴 암흑의 세월이 또 시작됐습니다.
'통비분자' 낙인에 고향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6월 항쟁. 신원 땅에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1988년 2월 15일 34년 전 오늘, 땅속에 묻힌
위령비가 27년만에 다시 세상밖으로 나왔습니다.
71년 전 그들은 공비를 소탕한다던 견벽청야
국군에, 이념의 싸움에 희생된 양민이었습니다.
정부차원 공식 사과와 배상은 아직도 요원합니다.
왜곡된 역사가 바로 설때까지 결코 일어날 수 없다며
한 서린 위령비는 지금껏 저렇게 드러누웠습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 10일 경북 경산 '박사리' 사건 등 147건에 대해
조사개시를 결정했습니다. 이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등에 대해 몇 차례 조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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