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은희경 작가의 연작소설집이다. 미국이라는 공간이 연결고리다. 더 강한 연결고리는 백수린 작가가 표사에 적시해뒀다. '사람 사이의 고독과 삶의 모순'이다. 표제작 '장미의 이름은 장미', 그리고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아가씨 유정도 하지'까지 네 작품이 실렸다. 작가가 미국 뉴욕에 머문 경험이 적잖이 묻어난다. 현장에 다녀와서 쓴 기사가 확연히 다른 것처럼.
작품 '우리는 왜 얼마동안 어디에'는 '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도 수록된 작품이다. 소통 플랫폼으로 인식되는 소셜미디어 속 일방적 배설이 보인다. 풍요로운 사진 이미지 너머의 고독이 보인다.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민영과 한국에 있는 친구 승아가 주인공이다. 민영의 '갬성미쿡생활'을 동경하던 승아의 뼈아픈 실책은 소셜미디어에서 비롯한다. 민영은 자신의 하루하루를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했다. 접사기능을 십분 활용해 찍은 사진에 적당한 글귀를 양념처럼 달아두면 지켜보는 이의 감성은 폭발하기 마련이었다. 민영의 뉴욕 자취방은 승아에게 해방구처럼 각인된다.
"놀러가도 돼?" "한번 놀러와." 미국과 한국의 거리만큼 심리적 거리감이 클 것이라 여긴 민영이 매뉴얼처럼 답한 말, 설마 찾아오겠나 싶어 쓴 말에 진짜 찾아간 승아는 부동산중개앱에서 본 사진만으로 전세 계약을 마친 세입자의 심정이 된다. 소셜미디어에 업로드된 민영의 공간과 일상은 고단함과 외로움에서 빚어진, 편집된 공간이었다. 괴리도 높은 '공간 뽀샵질'의 고수가 바로 민영이었던 거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승아는 천진하다못해 눈치가 없었다… 친하다고 해서 비슷해질 필요는 없었다.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미소를 보내고 손을 흔들면 되었다. 민영은 그것을 납득시키면서 유지해야 하는 관계들이 피곤했고 적당한 기만으로 덮어두지 못하는 자신 역시 지겨웠다…"

소설집 전반에는 경험과 연륜과 깨침에서 나온 명문이 많다. 밑줄을 쳐 읽는 수상록만큼이다. 깊은 성찰에서 끄집어 올린 문장들이다.
"…옷은 지나칠 정도로 잘 맞았는데 그것은 판매원과 엄마와 민영 세 사람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가격은 민영이 지금 입고 있는 할인매장 옷의 스무 배가 넘었다… 민영은 그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 옷을 입고 면접을 봐도 어차피 취직은 되지 않는다는 걸 엄마도 민영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엄마에게는 그 옷을 사줄 능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사자고 우기는 이유는 단지 그 옷이 민영의 등뼈를 곧게 세우고 얼굴에 조명을 반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민영이 그 옷을 사지 않겠다고 강력히 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있지 않았을까. 사라고 우기는 자신의 모습을 각인시키는 데까지만 성공해도 그 옷은 어느 정도의 역할은 해내는 셈이었다. 서로가 알면서도 연기를 하고 그 연기에 진심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 그런 기만이 필요할 만큼 둘 다 약해져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음식기행 프로그램 출연자가 말없이 음식만 먹는다면 그게 진짜라고. 말을 할 시간이 어디 있나. 맛있으면 먹기 바빠야 한다는 것이다. 단 네 편만 실린 소설집을 다 읽고는 비슷한 심정이 된다. 책만 만지작거리다 겉표지를 벗겨본다. '장미'를 지칭하는 여러 언어가 박혔다. 'Rose, Rosa, die Rose, roos, mawar, trandafir, 薔薇, ruusu…' 장미의 이름은 장미이고, 은희경의 소설은 은희경의 소설이다. 256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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