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청 시스티나 경당, 수난주간 성무일과(聖務日課)의 밤 중 기도인 테네브레가 진행되는 동안 시편창(唱)이 경당 가득 울린다. 교황과 추기경들은 무릎을 꿇은 채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한다. 제단을 밝히던 13개 촛불은 시편창이 끝날 때마다 하나씩 꺼진다. 제단 양쪽 성가대는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Miserere mei Deus·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부르면서 마지막 촛불이 희미하게 비친다. 한참을 숨죽이며 곡을 들은 모차르트는 합창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인다.
이 곡을 작곡한 그레고리오 알레그리는 유년시절 성당에서 소년합창단으로 노래했고 47세 때 시스티나 경당에 남성 고음부를 부르는 콘트랄토 성부의 성가대원으로 기용되었다. 그는 성무일과 중 테네브레를 위한 다성 음악 양식의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를 작곡했다. 노래의 가사는 다윗이 신복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을 전쟁에 보내 죽게 한 후 선지자를 통해 죄를 지적받고 참회하는 시편 51편의 내용이다. 곡의 형태는 오늘날 성부로 두 개의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5성부 합창 그룹과 두 개의 소프라노, 알토, 베이스 독창자 4명의 솔로 그룹으로 구성된 두 개 합창단이 주고받는 교창방식의 노래다.
중요한 사실은 교황청에서 처음부터 이 곡이 시스티나 경당 밖에서 불리어지는 것을 금지시키고 봉인했다. 그 이유는 곡이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스러워 모든 것을 압도하여 신마저 잊게 한다는 것이다. 성무일과 또는 미사에 불리어지는 수많은 곡 중 이만큼 신비스럽고 고결한 곡도 드물다. 사람들은 이 곡을 듣기 위해 일 년에 한번 수난주간 테네브레가 진행되는 시간에 맞추어 시스티나 경당을 찾아야 했다.
때마침 14살의 모차르트는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있었다. 이미 이 곡에 대한 소문을 들은 모차르트는 곡을 듣기 위해 테네브레 첫 날 시스티나 경당에 들어갔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시편창이 울려 퍼지면서 마지막 촛불만 어슴푸레 경당 내부를 밝혔다. 오묘하게 어울리는 성가대의 합창 소리가 경당 대리석 벽면과 천장을 울리면서 더욱 신비스럽게 들렸다. 가끔 솔로 그룹의 콜로라투라가 부르는 한 옥타브 위 C음은 천정을 뚫고 나갈 것처럼 투명했다. 마치 천상의 세계를 여행하는 듯했다.
모차르트는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조금 전에 들었던 곡을 모두 악보에 옮겼다. 다음날 악보에 적힌 음들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그 자리를 찾았다. 교황은 모차르트를 불렀다. 모차르트가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를 외부에 유출시킨다는 데 대한 문책의 자리였다. 교황은 10여 분이 넘는 길이의 다성 음악을 한 번 듣고 악보에 모두 옮긴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른 곡으로 모차르트를 시험했는데 모차르트는 듣자마자 거침없이 음표를 써 내려갔다. 이를 본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오히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높이 사 그를 크게 칭찬하고 황금박차 기사단 훈장을 수여했다.
이로써 1638년 알레고리가 쓴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가 1770년 14살의 모차르트에 의해 132년 만에 봉인이 해제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영국 음악학자 찰스 버니에 의해 곡을 악보로 출판하게 되었다. 한 세기 넘게 베일에 싸였던 이 곡이 천하에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은 공교롭게 모차르트의 천재성 때문이었다. 화려한 화성이 압도하는 탈리스 스콜라 합창단의 연주나 종교적인 경건함이 느껴지는 아 세이 보치(A Sei Voci) 합창단이 부른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를 들어보자. 그래서 신마저 잊게 한다는 곡의 신비함이 어떤 것인지 한 번 느껴보자.
대구시합창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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