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연 운영 중단 위기에도…관리기관은 '나몰라라'

입력 2021-12-30 17:05:57 수정 2021-12-30 20:28:23

27일 윤철수 이사장 돌연 사임…이사 2명도 중도 사퇴
재정난에 원장 장기 공백까지…대구시·산업부는 책임 떠넘기기

한국패션산업연구원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 산하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하 패션연)이 최근 이사장 중도 사퇴라는 악재까지 덮치며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 장기간 원장 자리가 공석인 와중에 수년째 적자 경영에 시달려 상황을 개선할 동력을 잃었지만 관리감독기관인 산업부와 대구시는 뒷짐만 지는 모양새다.

30일 패션연에 따르면 지난 27일 윤철수 패션연 이사장이 사임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4월 연임한 윤 전 이사장은 임기를 1년 3개월가량 남겨두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같은 날 선출직 이사 2명도 사의를 표명했다. 이로써 패션연 이사회는 당연직 이사(산업부, 대구시, 경북도 관계자) 3명과 선출직 이사 3명만 남았다.

언제 운영이 중단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궁핍한 패션연 재정 상황이 수뇌부들이 줄줄이 사퇴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는 뒷말이 나온다.

앞서 패션연에서 퇴사한 일부 직원들은 지난 10월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정산해 달라며 대구지방법원에 본원 건물 가압류 및 지급 명령 신청을 냈다. 이어 11월에는 일부 재직자들이 임금 체불을 이유로 서구 평리동에 있는 분원인 '의류봉제지원센터'에 대한 부동산 강제경매를 법원에 신청한 상태다. 현재 임금 체불 등을 포함한 패션연의 채무 규모는 약 15억원으로 알려졌다.

패션연 한 관계자는 "이르면 내년 5월 중으로 본원과 분원에 대한 강제경매가 집행될 예정"이라며 "사실상 기관이 무너진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라, 이사장과 이사들도 '험한 꼴 보긴 싫다' 싶어 그만둔 것으로 보인다. 책임을 떠안고 싶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컨트롤타워'인 원장의 부재가 길었던 패션연이기 때문에 이번 이사장 중도 사임이 '결정타'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패션연 원장직은 지난 2019년 3월부터 2년 9개월간 공석으로 남아있다. 주요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중추가 마비된 처지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는 상황에, 연구원을 되살리기 위해 힘써온 직원들도 점차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패션연 노조 관계자는 "직원들이 1년 가까이 매달 월급의 30~50% 정도를 운영비 명목으로 연구원에 빌려줬었지만, 더는 가망이 없어 보여 다음 달부터는 중단하기로 했다"며 "가장 피해를 본 이들은 결국 직원들이다. 급여가 크게 줄어든 탓에 재직자 중 일부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대출을 한도까지 끌어다 쓴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지만, 산업부와 대구시는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서로에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사태에 관해 산업부 관계자는 "산업부가 패션연의 관리감독기관이긴 하지만, 기능을 적절히 수행하는지를 모니터링하는 역할에 가깝다"며 "오히려 대구시가 보조사업 등으로 지원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을 것이다. 오래된 문제인 만큼 잘 협의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대구시 관계자는 "패션연은 산업부가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기에 기존의 사업 이외에 다른 지원을 해주기는 어렵다"며 "산업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방법을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상황에, 패션연 내부에선 "강 건너 불구경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미 대구시와 산업부에 ▷평리동 분원 매각 ▷대구시 출자기관 전환 등 대안을 여러 번 제시했으나, 제대로 된 답변조차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박재범 한국패션산업연구원 기획경영실장(원장 대행)은 "대구시와 산업부는 책임지기도, 욕먹기도 싫으니 우리가 말라죽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수뇌부도 없고 직원도 1년 새 절반 이상이 줄어 20명 정도로 사실상 정상 운영이 불가한 상황임에도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며 "지난 2년간 줄곧 이곳 상황을 설명했으나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이제 나를 포함한 모든 직원이 너무 지쳐버린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