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범 경북문화재단 대표(전 산업자원부 장관)
지난 1월 영국은 유럽연합(EU) 회원국에서 완전히 탈퇴하였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한 지 8년, 세 번의 시도 끝에 어렵게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한 지 47년 만에 영국은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의 대륙국가들과 결별했다.
영국은 유럽연합에 가입할 때부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은 전후 총리직을 사임하고 취리히대학에서 연설을 통해 '철의 장막'과 미국식 유럽합중국을 건설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영국은 승전국으로서 우월적 인식과 프랑스로부터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올 것을 걱정하여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대신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9개국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을 결성하였다.
반면 1, 2차 세계대전에서 총칼을 겨눈 프랑스와 독일은 1951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설립하였다. 석탄철강공동체는 프랑스와 독일의 최대 산업인 석탄과 철강산업 부흥을 통해 전후 복구를 이룩한다는 경제적인 목적 외에 두 나라 간 적대 관계를 해소함으로써 더 이상의 전쟁을 방지한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서유럽은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무역연합(EFTA)과 독일과 프랑스를 축으로 하는 석탄철강공동체의 후신인 경제공동체(EEC)로 양분되었다. 유럽공동체의 영향력이 커지자 영국은 2차례에 걸쳐 유럽공동체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였으나, 프랑스 드골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영국은 1973년 세 번째 시도 끝에 유럽공동체 회원국이 되었다.
유럽연합은 영국의 가입을 계기로 회원국 확대를 거듭해 폴란드, 헝가리 등 과거 동유럽 공산국가는 물론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 구(舊)소련 연방국가를 포함해 모두 28개국 5억 명의 인구가 단일 시장이 되었다. 유럽연합은 유로화로 통화 통합을 이룩한 데 이어 공동 외교안보정책과 내무사법정책을 실시해 처칠이 주장한 유럽합중국으로 다가가고 있다.
유럽 통합의 최대 수혜자는 유럽 시민과 기업이다. 5억 명의 회원국 시민들은 경제적으로 단일 소비자가 되었고, 기업들은 국가 간 관세나 비관세 장벽을 철폐함으로써 행정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국경을 철폐해 시민들은 한 나라같이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게 되었고, 단일 통화를 사용해 환전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영국 국민들은 유럽연합에 매년 140억 유로 이상을 부담하면서 자국에 돌아오는 수혜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불평하였다. 더구나 유럽의 이민정책에 따라 동유럽의 실업자와 시리아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하였다.
캐머런 총리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Brexit)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였다. 그는 보수당이 하원 650석 중 331석을 차지하고 있고, 여론조사 결과 52%가 유럽연합 잔류를 희망하고 있어 부결을 확신하고 모험을 벌인 것이다. 그러나 2016년 6월 실시한 국민투표 결과 51.9%가 찬성하자 영국은 혼란에 빠졌다. 금융시장은 동요하고, 다국적 기업들은 글로벌 본부를 이전하기 시작했다. 예산청은 최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유럽연합 탈퇴로 향후 15년간 국내총생산은 4%가 줄고 무역 손실은 그로 인한 이득의 178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의 국민투표 과정을 보면서 과연 민주주의의 본산이 맞는지를 의심케 한다. 일부 정치지도자는 거짓 선동과 비방, 심지어 테러까지 자행하면서 국민을 호도하였다. 국민들은 Brexit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모르고 정치인들의 선동을 따랐다. 가디언지는 '학벌을 통해 정계의 요직을 꿰찬 엘리트 정치인들의 타협할 줄 모르는 배타적 문화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우리에게도 정치의 계절이 오고 있다. 정책 대결이 아닌 거짓과 선동, 비방과 왜곡이 판칠 때 민주주의는 파국으로 달리게 된다. 슈뢰더 전 독일 총리처림 자신의 정치적 이해보다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는 지도자, 메르켈 전 독일 총리처럼 16년간 독일인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떠날 때 박수받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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