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사소한 것의 힘

입력 2021-12-02 11:01:27

박채현 동화작가

박채현 동화작가
박채현 동화작가

어느덧 12월이다.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면 이런저런 감정이 교차한다. 벌써 한 해가 다 갔구나. 또 나이를 한 살 더 먹겠구나. 이룬 것 없이 시간만 갔구나. 이러한 회한에 빠지면 새해 첫날 세운 계획이 쑥스러워진다. 그래서인지 12월에는 새로운 시도나 노력없이 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려는 마음도 생긴다.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다고 해서 헛산 건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환란에서 살아남았다. 나와 가족을 지켰고 자녀를 키워냈다. 사소하고 개인적인 일이 무슨 자랑거리냐고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작은 씨앗에서 싹이 자라나 나무가 되고, 빗방울이 모여 내를 이루듯. 한 걸음이 이어져 천 리를 가고, 점이 모여 선을 이룬다.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이 모여 큰 성과를 낸다. 반대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 사소한 것을 실천하지 않았거나 놓쳤기 때문이다.

"또 더러워질 건데 왜 씻어야 해요?",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열심히 해야 해요?"

아이의 질문에 말문이 턱 막힌 적이 있다. 어차피 '어차어피'(於此於彼)라는 말에 단서가 있다. 이러하나 저러하나 귀결되는 바는 같으므로 노력하면 뭣하냐는 관념이다. 한 달 안에 무언가를 이룰 수 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마음과 통하는 감정일 것이다.

'어차피'라는 말을 붙이면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더러워지더라도 지금은 씻고, 배고파지더라도 밥을 먹고, 또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살아야 한다. 이유는 즐겁기 위해서다. 작은 것을 해내고 이루려고 노력하는 동안 우리는 즐거움을 알게 되고 행복감을 얻게 된다. 말 그대로 어차피 죽을 건데 더럽고, 배고프고, 무기력하게 살다 죽을 이유는 없다.

성공에는 실패가 전제한다. 기는 아기가 일어서려면 엉덩방아를 숱하게 찧어야 한다. 직립한 아이는 무릎을 숱하게 깨면서 걸음마를 배운다. 더 커서 자전거를 배울 때도 그렇다.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 타기를 배운 사람은 없다. 우리가 체득한 모든 것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하며 얻은 산물이다. 이 산물이 쌓이면 단념하지 않고 앞을 헤쳐나가는 지혜가 된다.

남은 한 달 안에 큰일은 이룰 수 없겠지만 챙기지 못한 일을 돌볼 수 있다. 미처 치우지 못한 쓰레기를 버리거나 계절이 지난 옷을 정리할 수 있다. 읽지 않는 책이나 쓰지 않는 물건을 나눌 수도 있다. 고마운 이를 찾아 인사하고, 미안한 사람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는 것도 좋다. 일 년 동안 연락 못 한 사람이 있다면 안부 전화를 넣어 보자.

사소한 일을 하기에 한 달이 부족하지는 않다. 매일 하나의 과제를 정해 정리하고 갈무리하다 보면 소소한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뒤섞인 생각과 일들이 가지런해지면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도 한결 가볍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