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위험한 직업이 있다. 이 직업 종사자 대부분 끝이 안 좋다. 백분율로는 81.9%나 된다. 위험한 이 직업은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73년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11명 전임 대통령 중 9명의 말년이 불행했다. 국민에 의해 끌어내려지고 쫓겨났으며 피격돼 숨지거나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금도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있다. 비교적 무탈한 노후를 보낸 이는 2명(YS와 DJ)뿐이다.
전직 대통령이 국민 존경을 받으며 강의하러 다니지 못하는 나라. 이 정도면 대통령들 개인적 자질 문제 못지않게 우리 정치의 구조적 결함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에 문제가 있거나 대통령제가 우리 국민성과 화학적으로 잘 맞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대통령제는 미국 밖으로 나가면 독재와 키스한다'는 글을 본 적 있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 대통령제는 독재라는 괴물을 낳는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한 나라 치고는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있다. 하지만 극단적 진영 대결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정치 보복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은 대통령 중심제의 '사이드 이펙트'(side effect)일 수 있다. 돌이켜보자. 1세기도 채 안 되는 짧은 정치사에 우리나라만큼 여러 명의 대통령들이 권좌에서 끌어내려지고 퇴임 후 사법 처리 받는 나라가 더 있을까.
전직 대통령들이 단죄받는 일차적 이유는 재임 시절 저지른 범법 행위와 국정 실패다. 하지만 여기에 여론의 압력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정국 뒤흔드는 메가톤급 이슈가 있을 때마다 광화문 광장에는 수십만 명이 모인다. 촛불시위, 태극기집회 등 진보·보수 할 것 없다. 수십만 명 주권자들이 한데 모여 세상 들썩이게 큰 소리를 내는데 간담 서늘하지 않을 정치인은 없다.
어떤 대통령이 쫓겨나거나 퇴임 후 감옥에 갇히거나 비극을 겪으면 한쪽은 정의가 실현됐다고 좋아하지만, 반대쪽 진영은 한(恨)을 품는다. 자신이 열렬히 지지했고 소중한 표를 던진 대통령이 심판을 받고 나락에 떨어지면 지지자들도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게다가 광장 정치를 교묘히 자신의 정치적 이득으로 연결시키려고 주판알 튀기는 정치 세력도 항시 있다. 결국 정치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고, 대통령 선거는 축제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 전쟁이 된다.
이번 대선과 그 이후가 걱정스럽다. 홍준표 의원은 "두 분(윤석열·이재명) 중 지는 한 사람은 감옥 가야 하는 처절한 대선"이라는 SNS 글을 올렸다. 섣부른 예단이요 과장일 수 있지만 돌아가는 정황을 보니 전혀 엉뚱한 진단이라고 무시할 수도 없다.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자양분이고 정치인은 이를 잘 받들어야 한다. 하지만 극단적 진영 논리로 정치판을 사생결단 대결로 몰고 가는 성난 민심에 완충 역할을 하는 것 역시 정치다.
대통령은 확률적으로 매우 위험한 자리다. 당선된 날 하루는 기쁘겠지만 5년 임기 내내 고뇌와 과노동에 시달리고 퇴임 후 신변까지 걱정해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 이런 극한 직업을 선택하겠다는 정치인들이 참 많다. 일부 정치인들은 대통령을 배출하는 명당을 찾아 부모 묘소까지 옮긴다. 묘 잘 써서 대통령 되는 데 성공하지만 퇴임 후 불행해진다면 묫자리가 진정한 명당일까. 한풀이 정치는 사라져야 하고 대통령 잔혹사도 그만 되풀이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은 미래 지향적 선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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