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여당 대선 후보의 역사 인식

입력 2021-11-16 14:50:54 수정 2021-11-16 21:49:58

이춘수 동부지역본부장
이춘수 동부지역본부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최근 존 오소프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과 면담하면서 일제에 의한 한일합병 및 남북분단 문제를 놓고 '미국 책임론'을 언급했다.

이 후보는 "일본과 한국이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통해 승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1905년 미국과 일본이 각각 필리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승인한 것으로 일제가 5년 후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는 단초가 됐다.

또 이 후보는 일제가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패배한 뒤 "결국 피해국인 한반도가 분할되면서 (6·25)전쟁의 원인이 된 점에 대해선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들이 있다"고 했다. 한미동맹의 그늘도 있었다는 취지지만, 대선 후보가 미국 일개 의원에게 역사적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 후보는 올해 3·1절 기념행사에서도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친일 매국 세력의 아버지"라고 했고, 산업화의 위업을 성취한 박정희 대통령과 이후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세력을 '친일 독재 매국 세력'으로 규정했다.

해방 직후 북한 정권의 성립 과정을 보자. 김일성(소련군 대위 출신)을 주석으로 하는 초대 내각과 군부 핵심 간부 상당수는 친일파였다. '백두 혈통'으로 미화되고 있는 김일성 집안 자체가 친일파들을 다수 배출했다.

부주석에 임명된 동생 김영주는 일제강점기 헌병 보조원,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은 강반석(김일성 모친)의 아저씨뻘인 강양욱은 일제강점기 도의원을 지냈다.

월북해 부총리를 맡았던 홍명희는 일제강점기 말 이광수와 함께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한 '임전대책협의회'에서 적극 활동했다.

특히 군부는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중추였다. 초대 공군사령관 이활, 인민군 9사단장 허민국, 인민군 기술 부사단장 강치우 등은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출신들이다.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은 달랐다. 초대 입법, 사법, 행정 3부의 수장과 첫 내각 장관 대다수가 임정 요인이나 독립운동가 출신이었다. 대통령 이승만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지냈고, 이승만의 뒤를 이어 제헌의회 의장이 된 신익희는 임정 출범 당시 임시 헌장을 기초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는 좌우 합작 항일 민족 단체인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장 출신으로 광주학생운동과 6·10만세운동 관련자들을 변호했던 독립운동가 출신이다.

부통령 이시영(임시정부 법무·재무총장), 총리 겸 국방장관 이범석(임정 광복군 참모장), 법무장관 이인(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된 항일 변호사), 재무장관 김도연(2·8독립선언 및 조선어학회사건 투옥)도 애국지사였다.

친일파의 권력 참여 정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북한의 김일성 공산 정권이 친일파 정권이다. 친일 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는 이 후보의 주장이야말로 명백한 거짓이다.

인류의 보편 가치인 자유·인권의 관점에서 굳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에 관한 유엔총회 결의(1947. 11. 14.)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은 역사적 정통성과 합법성을 갖춘 한반도 유일의 정부이다.

내년 3월 9일이면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이념에 편향된 설익은 역사관을 가진 후보라면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는 없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상황 극복은 아예 기대조차할 수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