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트로이 목마와 야당 경선의 역설

입력 2021-10-29 16:55:41 수정 2021-10-29 18:36:44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라오콘 군상. 바티칸 박물관 제공
라오콘 군상. 바티칸 박물관 제공

터키는 7세기 당나라에 맞서던 고구려의 동맹, 돌궐(突厥)족의 나라로 6·25에도 참전했으니 1천 년 넘게 혈맹인 셈이다. 지중해, 흑해, 카파도키아 등의 수려한 풍광은 물론 인류사를 아로새기는 역사문화 유산에서 단연 압도적이다.

1만여 년 전 시작된 신석기 농사문명의 발원지이자 인류사 최초의 철기문화 발상지가 터키 땅이다. B.C. 8세기 이후 이오니아 계열 그리스인들이 정착해 로마시대까지 조성한 역사 유적들은 탐방객을 설레게 만든다. 기독교와 관련해서도 '노아의 방주'가 닿았다는 아라라트산과 아브라함의 탄생지를 비롯해 교황청이 공식 인정한 성모 마리아의 집과 사도 바울의 고향 집 등 기독교의 역사를 웅변한다.

트로이목마
트로이목마

그중에서도 한국인들은 '트로이'(Troy)에 관심을 갖는다. 에게해 다다넬즈 해협의 남단에 자리한 트로이를 한국에서 출발하는 단체관광에서도 필수 코스처럼 들른다. 트로이 유적은 19세기 말 독일 출신 하인리히 슐레이만이 발굴해 그리스 신화의 세계를 현실 역사의 세계로 돌려놓았다. 트로이 전쟁 개시 10년째 그리스 연합군은 목마 배 속에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당대 최고 전사들을 숨긴 채 트로이 성 앞에 놓은 뒤, 위장 철군하는 작전을 펼쳤다.

트로이 사람들은 그리스 연합군이 철군 선물로 전한 것이니, 목마를 성안에 들이자고 주장했다. 이때 트로이 목마의 흉계를 간파하고 목마의 배를 창으로 찌르며 경계한 인물을 로마의 바티칸 교황청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B.C. 5세기 고전기 그리스 조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라오콘 군상'이다.

그리스 연합군을 응원하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트로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해 바다뱀을 보내 트로이 신관 라오콘과 두 아들을 죽였다. 이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 라오콘 군상이다. 라오콘이 허무하게 죽고 난 뒤, 트로이 목마의 간계를 알아채지 못한 트로이 사람들은 목마를 성안으로 들였다.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실컷 마시고 깊은 잠에 빠졌다. 목마에서 나온 용사들이 트로이 성문을 열었고, 대기하던 그리스 대군이 밀려 들어와 트로이를 초토화시켰다.

트로이성 모습
트로이성 모습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출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단군 이래 최대 부패 사건인 대장동 개발 설계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혐의를 낱낱이 밝혀 상식과 정의, 공정을 다시 세울 최적의 국민의힘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과반수 이상 국민의 바람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후보 선출 방식이 이 열망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지 의구심을 자아낸다. 당원 투표 50%에 국민 여론조사 50%를 더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자가 반반이라고 가정할 때, 민주당 지지자가 참여할 확률이 50%에 가깝다. "친여 성향 커뮤니티에서 국민의힘 여론조사 연락을 받으면 이재명을 택하지 말고 무조건 홍준표를 선택하라고 권한다"는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의 지적처럼 트로이 목마의 함정에 빠진 게 국민의힘 경선의 슬픈 자화상이다.

28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 이재명에 맞설 경쟁력 있는 국민의힘 후보로 홍준표 38.2%, 윤석열 33.1%가 나왔다. 그러나, 국민의힘 지지층만 보면 윤석열 55.6%, 홍준표 34.5%, 민주당 지지층만 보면 홍준표 45.1%, 윤석열 9.3%로 민주당 지지자들의 역선택이 확연히 드러난다.

본선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로이 목마 속 그리스 병사처럼 국민의힘에 치명적 타격을 가할 것임은 불문가지다. 전 세계 민주국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역선택의 트로이 목마식 공직 후보자 선출 방식이 이번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