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호 칼럼] 판사 독재

입력 2026-02-22 11:21:35 수정 2026-02-22 14: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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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호 전 부장판사, 동대구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황현호 전 부장판사
황현호 전 부장판사

황현호 전 부장판사, 동대구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요즈음 법원에서 판사들의 독재가 심각하다. 국민이 직선제로 뽑은 대통령에 대해서 아무런 견제 장치 없이 어떤 판사는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어떤 판사는 발부한다. 헌법재판소는 그래도 9명의 원로 재판관이 합의제로 판결하지만 하급심 법원은 1명의 부장판사가 신참 배석판사 2명을 데리고 거의 독단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선고한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 과정에서 비상계엄이 내란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언급하자, 소추인단이 내란죄를 소추 사유에서 철회하였다. 그런데 비상계엄과 관련된 피고인 20여 명이 분산 기소된 서울중앙지방법원 4개 재판부에서는 모두 내란죄를 인정하였다. 어떤 부장판사는 판사를 욕하였다고 감치 영장을 직접 들고 다른 법정을 찾아가면서 해당 변호사를 감치시켰다.

지금까지 독재라 하면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 의한 독재를 의미했다. 그러다가 김영삼 정부에 들어와 국회에서 5·18 특별법 등 처분성 법률을 다수 제정하기 시작하여 입법권을 남용하고부터 국회 독재가 출현하였다. 그 외에도 청문회, 특별검사, 국정조사, 국정감사 등 국회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국회 독재가 심화되었다.

국회 독재는 결국 사법 독재와 결부되었다. 국회 다수당이 소수당을 압박하기 위하여 정치인에 대한 고소, 고발, 수사를 남발하고 수사 및 사법을 정치화시켰다. 사법부에는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사조직 소속 정치적 성향의 판사들이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이들은 판결이 곧 정치라며 재판을 정치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판사 독재의 절정은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과 구속이었다. 그 뒤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을 필두로 전 대법원장, 국정원장, 장관 등 무수한 전 정부 인사들이 구속되었다. 이들의 사법 처리 과정에서 법치주의는 소멸되고 경제공동체, 묵시적 청탁, 사법 거래, 국정 농단, 블랙리스트, 직권남용, 직무유기 등 애매한 잣대로 전 정부 인사를 처벌하였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장기형이 선고되었지만, 중도에 사면이 되어 재판이 들러리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윤석열 피고인은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세계에서 전례 없는 내란죄로 구속되어 탄핵이 되고, 1심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이 선고되기도 전에 어떤 부장판사는 한덕수 전 총리에 대해서 내란 중요임무 종사죄를 인정하고 구형량 15년을 초과하는 23년형을 선고하였다. 한덕수 전 총리는 계엄 당일 국무회의에서 계엄을 반대한 것이 당시 공개 영상에도 나온다. 계엄 당일 국무회의에 출석하고서 비상계엄이 실시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고 사전에 중요임무를 분담했다고 볼 수 없다.

그 반면 어떤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하여 내란 중요임무 종사죄를 인정하고도 15년 구형에 징역 7년을 선고하였다. 이상민 장관은 경찰청장을 지휘하는 장관으로서 국회 청사에 단전, 단수를 지시하였으므로 국무총리에 비하여 죄질이 더 무겁다고 봐야 한다. 이상민 전 장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과 충암고 동문으로서 평소 유대감이 깊었다. 이들 3인이 계엄에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형량은 국무총리의 3분의 1이다.

판사의 재량과 독재가 심각하다. 그 영향으로 일반 민사사건도 재판장의 독단으로 판결하는 경향이 심해졌다. 법치는 훼손되고 민주화는 후퇴되는 광경을 보고 있다. 정치적 사건의 판결로 인하여 사법부가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일부 판사의 공명심에 의해 판결의 공정성이 의심되고 나머지 다수의 판사들은 마지못해 따라가는 형국이다. 과거에 정치는 부패했더라도 사법부는 순수성을 유지했는데 지금은 사법부가 정직성, 신뢰성을 상실하고 정치적 관점에서 판결을 하는 매우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18년 동안 정적을 사법적으로 처리한 예는 없었다. 3차례에 걸친 대통령 직접 선거에서 모두 당선되었지만 선거 과정에서 있었던 상대 후보의 약점을 잡아 형사처벌을 한 전례는 없었다. 정치는 정치로 풀어야지 사법적으로 처리하면 정치도, 사법도 신뢰를 상실하게 된다. 지금 사법부는 법치주의와 사법 독립의 면에서 1970년대보다도 후퇴하고 있다.